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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원근법] 헤븐 코리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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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원근법] 헤븐 코리아로 가는 길

입력
2015.12.3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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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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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을 널리 알린 서양 고전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이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을 헤매었네.” ‘신곡’ ‘지옥 편(사진)’의 첫 구절이다. 반 고비란 서른다섯의 나이를 뜻한다. 단테는 인간의 자연 수명이 일흔이라는 성경 ‘시편’의 말을 참고했다고 한다.

2016년을 맞이하는 1월 1일, 단테의 ‘신곡’을 떠올린 것은 우리 사회의 선 자리와 갈 길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사회적 시간의 관점에서 오늘은 새로운 1년의 시작이다. 하지만 물리적 시간의 관점에서 2016년은 2015년의 연속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됐던 말은 ‘헬조선’이었다. 해가 바뀌었다고 헬조선이 갑자기 변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과 혼용무도(昏庸無道)의 사회는 여전히 지속된다.

선진국으로 가는 도정에서 우리 사회는 현재 반 고비에 놓여 있다. 저성장ㆍ빈부격차ㆍ저출산ㆍ고령화 등에 대면해 인구절벽ㆍ취업절벽ㆍ소통절벽ㆍ계층절벽 등 사방이 온통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보수적 선진화도 좋고, 진보적 복지국가도 좋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 ‘선진 복지국가’로 가야 하는데도 단테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 우리 사회는 길을 잃고 어두운 숲을 헤매는 게 분명하다.

시야를 넓게 하면 우리 사회의 현재적 프레임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등장한 ‘97년체제’다. 경제적 신자유주의, 정치적 ‘두 국민’ 국가, 사회적 불안과 격차가 97년체제의 속살들이다. 얼마 전 한 월간지에서 나눈 대담에서 미국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신기욱 소장은 한국사회가 정치ㆍ경제ㆍ교육 등 각론을 보면 곧 쓰러질 것 같아도 총론으로는 그래도 잘 나가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제 그 총론의 에너지마저도 고갈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심각하다면, 그 원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실현 가능한 해법이 중요하다. 헬조선이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면, 헬조선에서 ‘헤븐 코리아’로 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념적 입장을 떠나 생각하면, 현재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가장 큰 문제는 ‘먹고사니즘’을 위협하는 저성장과 격차 확대다.

저성장과 격차사회에 대한 해법은 분명하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구조개혁과 신성장동력을 발굴할 과학기술 투자만이 저성장을 탈출할 수 있게 하며, 사회적 타협에 입각한 일자리 창출과 재정 개혁을 통한 복지 기반의 확충만이 격차 확대를 제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삶의 본령을 ‘생활’이 아닌 ‘생존’으로 끌어내리는 먹고사니즘의 현실은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인간적인 비참함을 안겨주고 있다. 이점에서 미국의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이 강조했듯 ‘문제는 역시 경제’다. 성장률을 제고하고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것 이외에 헬조선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사실 없다.

문제를 풀기가 더욱 어려운 것은 경제적 해법들을 제도화해야 하는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규제개혁, 산업부문 재편, 일자리 창출, 가계부채와 주거문제 해결 등 법과 제도의 정비에서 우리 정치사회는 국민을 둘로 나누는 능력은 탁월해도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을 도출하는 역량이 더없이 허약하다. 사안의 복잡함을 고려한 섬세한 리더십도,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결단의 리더십도 부재한 정치사회를 지켜보면, ‘문제는 역시 정치’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헤븐 코리아로 가는 문은 저성장과 불평등을 해결할 포용적 경제 질서와 이를 제도화할 수 있는 포용적 정치 질서가 결합할 때만 열릴 수 있다.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의 입구에 도달한 단테에게 이제까지 동행한 베르길리우스는 이런 말을 건넨다. “남들이 뭐라 하던 넌 너의 길을 가라.” 새해를 맞이하면서 따듯한 경제, 좋은 정치, 활기찬 사회에의 소망을 전하고 싶은데, 선뜻 이를 말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첫날 소망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너의 길과 나의 길, 헤븐 코리아로 가는 우리의 길을 열 수 있는 경제와 정치의 일대 혁신이 올해에는 부디 이뤄지길 간절히 희망한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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