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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정위도 법원도 인정한 ‘동부건설 갑질’... 검찰만 무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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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정위도 법원도 인정한 ‘동부건설 갑질’... 검찰만 무혐의

입력
2018.02.22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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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건설이 영세 협력사의 공사대금을 부당하게 ‘후려친’ 혐의에 대해 검찰이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법원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모두 ‘갑질’로 인정한 부분에 대해 검찰만 유독 다른 판단을 한 것이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을’인 영세 협력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21일 국회와 공정위 등에 따르면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부장 이문성)는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동부건설에 대해 최근 불기소처분(증거불충분)을 내렸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협력사인 ‘에어넷트시스템’(이하 에어넷)에 에어컨 냉매 배관공사 등을 위탁한 후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감액한 동부건설을 검찰에 고발했다.

사건의 발단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에어넷은 2012년 11월 동부건설에 “동자4구역 주상복합 신축공사 등 11개 현장 하도급대금 33억원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에어넷은 결국 25억원에 미지급대금을 정산하자는 동부건설의 제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 돈을 받지 못했다. 더구나 동부건설은 합의금을 모두 지급했다며 2013년 11월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민사소송까지 냈다. 에어넷은 동부건설이 지급한 돈은 다른 공사 대금이란 입장이다. 이에 에어넷은 2014년 7월 “합의는 동부건설이 계약해지 등을 압박한 탓에 대금을 부당하게 감액해 이뤄진 것”이라며 공정위에 신고하고 손해배상청구(민사)을 제기했다.

법원은 에어넷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동부지법 민사 제14부(부장 강화석)는 지난해 5월 “동부건설이 우월적 지위에서 대금 2억3,900만원을 부당 감액했다”며 4억원(이자 포함)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공정위도 1년간의 심의 끝에 같은 해 11월 동부건설을 검찰에 고발했다. 절대적인 감액 규모가 크진 않지만 부당감액은 하도급 ‘갑질’ 중에서도 중대한 법 위반 행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은 갑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불기소이유통지서에 따르면 검찰은 하도급법 부당감액(제11조제1항)의 기준이 되는 하도급 대금을 ‘공사계약서상 대금’으로 해석한 뒤 사건의 본질을 기성율(공사진행 정도)에 대한 양사간 입장 차로 파악했다. 가령 계약서상 100억원인 공사에서 에어넷이 기성율 70%를 주장하며 기성금(공사가 진행된 만큼 청구하는 금액) 70억원을 요구하고 동부건설이 60억원(기성율 60%)을 고수하면 이는 기성금의 조정(재산정)일 뿐 계약서 금액자체가 변경된 게 아니기 때문에 부당감액으로 볼 수 없다는 논지다.

시민단체들은 검찰이 하도급사건의 본질을 100%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관계자는 “계약서상 공사대금을 변경해야만 부당감액이 성립된다는 논리는 하도급법을 완전히 축소 해석한 것”이라며 “검찰 논리라면 부당감액은 거의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흥열 에어넷 대표는 “100억원에 계약해도 실제 공사대금이 150억원 혹은 90억원으로 증감될 수 있어 계약서 금액은 의미가 없다”며 “하도급대금은 매달 지급되는 기성금으로 보는 게 상식”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기성율에 대한 ‘간극’이 존재하는 경우, 어느 쪽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검찰이 수사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불기소이유통지서에는 “에어넷의 기성율을 인정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동부건설 ‘주장’과 같다. 이러한 검찰 판단에 공정위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동우 민변 변호사는 “하도급 분야에 대한 검찰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공소시효가 임박해 시간에도 쫓긴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의 형사상 공소시효 만료시점은 지난해 12월 26일이었다.

에어넷은 5년간의 소송분쟁 과정에서 2014년 10월 자금난으로 문을 닫았다. 김 대표는 “과거 전체 매출에서 동부건설 비중이 85%에 육박했는데 소송 과정에서 일감이 다 끊겼다”며 “이제 형사처벌을 물을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졌다”고 말했다. 동부건설 법무팀 관계자는 “현행법상 ‘상호간 약정된 계약금액을 정당한 사유 없이 감액할 때’ 부당감액이 성립하는데 에어넷이 주장한 33억원은 일방적인 금액일 뿐 상호간 협의를 거쳐 약속한 금액이 아닌 만큼 부당감액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11개 현장 중 일부는 ‘동부건설→삼성전자→에어넷’의 하도급 구조였는데 부당감액이 있었다면 삼성전자가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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