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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남북 철도연결 ③

입력
2018.08.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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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은 군용철도로 탄생하여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일본정부는 1904년 2월 21일 병참총감 아래 임시군용철도감부를 설치하고 경의선을 일본군이 직접 부설하라고 명령했다. 일본군 철도대대와 공병대대는 1904년 3월 12일 용산에서 착공, 1905년 4월 28일 신의주까지 일단 완공했다. 불과 1년여 만에, 그것도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면서 497㎞ 경의선을 건설한 것은 세계철도사상 보기 드문 사례였다. 40년 후,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통해 ‘죽음의 철도’로 알려진 태면철도(泰緬鐵道, 타이-버마, 415㎞)를 건설하는데 1년 4개월 걸렸다.

일본군은 경의선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 구간을 48개 공구로 나눠 일본 토목건축회사에 청부했다. 아무리 주야겸행 돌관공사를 강행하더라도 군대만으로 1년 안에 완공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호시탐탐 수주를 노리던 하자마구미(間組) 등 토건회사에 많은 공사를 맡긴 것이다. 따라서 경의선은 일본군과 일본토건업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일찍 승기를 잡아 경의선을 군용철도로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 일본은 곧 한국을 영구 지배하겠다는 방침을 굳히고, 속성위주로 부실하게 건설한 경의선을 신설수준으로 개축했다(1905.3∼1911.2). 전쟁 중 출혈경쟁으로 적자를 본 토건회사에는 개축과정에서 충분한 이윤을 보전했다. 일본토건업은 경의선공사를 발판으로 한국과 만주 등에서 일본의 침략을 실행하는 첨병으로 성장했다.

경의선은 방대한 철도용지와 군사용지를 거느렸다. 일본정부는 1904년 2월 23일 한국정부를 위협하여 ‘한일의정서’를 체결했다. 골자는 일본이 한국의 황실과 영토를 보장하는 대신 한국은 일본에 기지와 편의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한국정부를 강박하여 최대한 넓은 토지를 수용했다. 내부대신 이지용과 한국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1904년 8월 대체로 경의선의 선로부지 804만 평, 정차장 부지 488만 평, 기타 용지 167만 평으로 합의했다. 군사용지는 별도였다. 주요 정차장의 내역을 보면, 용산역은 철도용지 51만 평과 군사용지 250만 평, 평양역은 철도용지 36만 평과 군사용지 358만 평, 신의주역은 철도용지 62만 평과 군사용지 220만 평이었다. 3개 정차장의 철도용지는 149만 평, 군사용지는 828만 평이었다. 기타 정차장 평균 면적은 11만 평이었다.

토지를 빼앗긴 한국 민중은 거세게 저항하며 철도와 일본인을 수시로 공격했다. 일본은 경의선 일대에 군율을 선포하고 참혹하게 탄압하여 1904년 8월부터 2년 남짓 35명을 사형에 처했다. 고종 황제는 1905년 11월 ‘을사조약’의 체결을 강요하기 위해 방한한 이토 히로부미에게 한국인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듯하니 군법시행을 완화해줄 것을 요구했다. 일본정부는 한국 민심이 너무 흉흉해 통감 지배가 어려워진 상황을 감안하여, 1908년 4월, 수용한 토지 일부를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이에 용산역은 철도용지 51만 평과 군사용지 115만 평, 평양역은 철도용지 38만 평과 군사용지 196만 평, 신의주역은 철도용지 13만 평과 군사용지 86만 평으로 조정되었다. 3개 정차장의 철도용지는 102만 평, 군사용지는 397만 평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가장 큰 도쿄 우에노역의 면적은 약 3만 평이었다.

일본은 경의선 연선에 방대한 철도시설과 군사기지를 구축하고 군사작전에 충분히 활용했다. 시베리아 출병(1919∼1925), 만주사변(1931∼1932), 아시아태평양전쟁(1937∼1945)에서 경의선은 방대한 일본군과 군수물자를 수송했다. 이때 용산 평양 신의주 등에 주둔한 일본군은 경의선을 타고 직접 출동했다. 경의선과 군사의 일체화는 해방 후 6ㆍ25전쟁(1950∼1953)에서 다시 증명되고, 그 형상은 지금도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광대한 미군기지와 병기공장으로 남아있다.

무기체제가 탱크, 비행기, 미사일, 핵폭탄 등으로 진화한 오늘날 철도의 군사적 효용을 운위하는 것은 시대착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유사시에 상대를 궁극적으로 평정하는 자는 군대이고, 군대를 대량으로 신속히 운반하는 수단은 여전히 철도다. 남북한 당국은 철도연결을 계기로 경의선에 배어있는 군사적 성격을 불식하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행동으로 보여주기 바란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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