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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잃은 서도소리… 설 자리 없어 더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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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잃은 서도소리… 설 자리 없어 더 외로워"

입력
2015.02.1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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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이수자 박일엽씨 12일 첫 서울 공연

시흥의 전수관에서 박일엽씨가 동고동락하는 수강생들의 격조 있는 서도소리에 맞춰 장고를 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
시흥의 전수관에서 박일엽씨가 동고동락하는 수강생들의 격조 있는 서도소리에 맞춰 장고를 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

50년 국악 인생을 살고 나니 서울 길이 기다린다. 서울, 아니 남한과 연분 없는 소리가 연 길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 박일엽(58)씨가 12일 오후 2시 한국의집 민속극장에서 첫 서울 무대를 연다.

그러나 그의 전수관에서 벌어지는 일상은 여전하다. “밀물썰물 드나드는 시흥시 월곶 포구”라고 2012년에 쓴 책 ‘서도 좌창과 생활 단상’의 머리말에 적은 그곳에서 그는 전수생 100여명을 교육하고 있다.

구전심수(口傳心授), 말과 마음으로 이어져 온 박씨의 서도소리에는 묘한 쓸쓸함이 배어 있다. 남도민요의 한도, 경기민요의 흥도 아닌, 이를테면 과거를 그리는 퇴락의 정서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서성이는 소리지만 일제 강점기 시대만 해도 평양과 개성의 예인들이 경성을 휘저었죠.” 지금은 이북오도청이 문화재로 관리하는 이 노랫가락을 두고 그는 “아직도 외롭고 쓸쓸하다”는 마음을 떨치지 못 한다.

박일엽은 잊혀진 소리의 적자다. ‘서도좌창’을 시리즈 음반으로 발표한 것은 박씨가 유일하다. 현재 모두 일곱 장을 헤아리는 음반은 애초 일반 민요 창법으로 시작했으나 결국은 서도소리의 진국을 찾아가는 탐색을 고스란히 기록했다. “국토 분단 이후 남한에서는 고향을 잃은 소리가 돼 가끔 국가가 세워주는 무대가 아니면 일반과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자신에게 조차 서도소리 무대는 상징의 차원이 더 크다. 지금껏 다섯 차례 가졌던 시흥의 무대는 시흥 바닷가 소리 등 지역의 소리를 모은 것이었다. 야위어가는 서도소리를 두고 그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사재를 털다시피 해 준비한 12일 공연은 결과적으로 서울에서 여는 첫 개인 발표회다. 사재로 9할, 제작진이 갹출한 정성이 나머지 9할로 마련되는 이번 무대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1년에 소화하는 300여 개의 일반 무대와 견주었을 때 더욱 그렇다.

그의 인생 행로는 30대에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서도민요 ‘수심가’로 인해 바뀌었다. 국창 소리를 듣던 서도명창 김정연의 전수조교 이춘목을 수소문해 늦깎이 공부에 빠져들었다. “요성을 매우 잘게 떠는 시김새(토리)가 특히 어렵지만 애잔하고 힘이 있고 멋스럽죠. 깊이 있어 끌목(길게 끄는 소리), 떨목(얇게 떠는 소리) 등 딴 데는 없는 섬세하고 고운 기교가 필요해요.”

가장 나중에 입문한 서도소리에 결박된 그는 마침내 200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 박일엽’으로 지정됐다. 김정연?이춘목?박일엽이라는 서도소리의 교과서적 계보가 확립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서도소리를 향한 마음은 비루먹은 누렁이를 보듯 안쓰럽고 애틋하다. 분단 상태에서 고향을 잃은 자들의 소리인데다 무대에 오를 기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신이나 흥과 거리가 멀뿐더러 지역적 기반조차 없는 상태라 일반인은 만날 기회조차 희소하다. 북한에서도 마지막 보유자 김진명이 타계한 뒤로는 완전 절연 상태다.

그는 전북 임실 출신이다. 네 살 때부터 시조창을 따라 하더니 예닐곱 살부터는 창극단에서 농악, 판소리, 민요 공부 등을 하며 소녀 시절을 보냈다. “점심 때가 되면 손님이 갈까 봐 발을 묶어두는 방편으로 아이들의 설익은 연극과 소리를 맛보기로 보였어요. 끝나면 눈깔사탕 얻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요.” 동네 사람들은 곡식을 걷어주었다. “사당패가 전문 연희단이라면 원초적 창극단이었던 셈이죠.”

이번 무대에는 든든한 동지들이 함께 한다. 남성 무용 ‘한량무’를 막내 정의범(18ㆍ시흥 함현고2)이 함께 하며 관객의 흥미를 배가시킬 해설과 사회는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남편 정원철(60ㆍ시흥문화원장)씨가 맡는다.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3호 서도산타령 보유자 이문주의 장고, 남유진의 해금도 함께 한다. 서도소리의 텍스트인 한시 등에 빠져들다가 2013년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박씨는 작사와 개사, 음반 해설서 작성까지 맡고 있으니 보통 연주자는 아니다. (02)2266-6938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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