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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한 두 번째 삶...허구를 통한 속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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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한 두 번째 삶...허구를 통한 속죄의 기록

입력
2014.08.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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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밴 지음ㆍ조영학 옮김

아르테 발행ㆍ320쪽ㆍ1만3,000원

동거 거부당한 아버지 자살, 죄의식에 내던져진 어린 아들

알래스카의 대자연이 감춘 부자의 비극적 운명 이야기

데이비드 밴은 ‘자살의 전설’에서 “허구들이야말로 내가 말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사실이기도 하다”고 ‘작가의 말’에 적었다. 아르테 제공
데이비드 밴은 ‘자살의 전설’에서 “허구들이야말로 내가 말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사실이기도 하다”고 ‘작가의 말’에 적었다. 아르테 제공

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밴(48)의 ‘자살의 전설’은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작가의 자전적 체험을 질료 삼아 씌어진 연작소설집이다. 알래스카 알류산열도에서 태어나 케치칸이라는 한대우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치과의사이자 낭만적이고 무모한 어부였던 아버지의 불륜으로 가정이 깨지면서 어머니를 따라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살아간다. 소년이었던 작가는 방학이면 아버지가 살고 있는 알래스카로 가 함께 지내며 대자연의 모험을 만끽하기도 하지만, 두 번째 결혼마저 망쳐버린 아버지가 1년만 알래스카에서 함께 살자고 간청하자 거절해 버린다. 그의 거절 직후, 아버지는 자살한다.

한 편의 중편과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자살의 전설’은 열세 살 소년으로서는 감당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었던 비극적 사건과 그 사건이 초래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죄의식으로부터 잉태됐다. 아버지의 자살은 그에게 한낱 소식이 아니었다. 새 어머니와 통화하던 소년은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새 어머니 뒤에 서서 절규하듯 사랑을 고백하던 아버지가 자기 자신을 향해 쏜 총소리를 전화기를 통해 직접 들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이제 그에게 존재의 거처는 죄의식이요, 존재의 사명은 속죄다.

책의 중심이 되는 중편 ‘수콴 섬’은 허구를 통한 그 속죄의 기록이다. 작가는 다 무너져 내린 아버지가 1년만 함께 살자고 애원하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허구라는 ‘두 번째 삶’ 속에서 아버지의 부탁을 받아들인다. 어쩐지 아버지가 자살할 것만 같아 마지못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의 모험 속에 행복 따위는 없다. 비극은 이 부자의 운명에 내장된 서사다.

소설은 내면세계든 외부세계든 때때로 지루하리만큼 치밀하고 끈질지게 묘사한다. 삶이라는 것을 손에 들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던 불안정하고 나약한 아버지와 그의 절망의 자장으로부터 결코 헤어날 수 없었던 어린 아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독자를 포박하고, 상처받은 자들이 철없이 생의 안식처로 흠모하는 대자연의 잔혹이 알래스카의 축축한 눈비와 칼바람으로 책장을 할퀸다. 침낭 속에서 홀로 흐느껴 우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속수무책으로 들으며 잠을 청해야 했던 두 부자의 길고 지루한 밤. 끝내 자살도 하지 못하는 유약한 아버지와 아버지의 횡액을 막으려는 듯 자살의 올가미에 스스로를 내던진 어린 아들의 빗나간 운명이 서사를 폭주시키고, 그 폭주의 끝에 아버지는 너무 늦은 깨달음의 지점에 착지한다. “아들 로이가 아버지를 사랑했음을, 그 사랑으로 충분해야 했다는 사실을.”

단편들은 아버지의 자살로 이중의 삶을 살아야 했던 작가의 내면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낮에는 올곧은 우등생이었던 그는 밤이면 아버지의 총을 들고 나가 가로등을 저격하는 무서운 소년이었고(‘선인의 전설’), 아버지의 자살이 수치스러워 암으로 사인을 위장하는 거짓말쟁이였다. 소년기 내내 그 사건을 외면했던 그가 심연을 응시하기 시작한 것은 19세 때 소설을 통해서였다.

허구와 자전이 뒤섞인 소설들을 쓰는 과정은 작가에게 “아버지를 회복”하고자 하는 여행이자 실험이었고, 그는 마침내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함께 1년간 살고 싶다는 욕망 속에 두 번째 삶을 다시 사는 데 성공했다. “경험으로 볼 때 허구는 실제보다 더 삶에 가깝다. ‘수콴 섬’에서의 순간들은 내가 기억하는 어느 실제 사건들보다, 내가 어떻게 아버지를 겪었는지를 더 잘 드러내준다.” 10년에 걸쳐 씌어진 이 소설집은 2011년 출간된 이후 프랑스 메디치상을 비롯해 전 세계 12개 문학상을 받았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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