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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범죄의 쉬운 대상, 길고양이와 캣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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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범죄의 쉬운 대상, 길고양이와 캣맘

입력
2015.10.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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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대표가 겨울철 길고양이를 위해 만들어 준 공간. 김보경 제공
김보경 대표가 겨울철 길고양이를 위해 만들어 준 공간. 김보경 제공

우려했고 두려웠던 일이 일어났다. 길고양이 겨울 집을 만들던 캣맘(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돌보는 사람)이 아파트에서 떨어진 벽돌을 맞아 숨졌다. 경찰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벽돌을 던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용의자를 추적 중이다.

아마 이 기사를 접하고 가슴이 서늘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며칠 사이 기온이 뚝뚝 떨어지면서 대부분의 캣맘들은 숨진 캣맘처럼 ‘겨우내 길고양이들 추위 피할 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테니까. 내가 운영하는 동물 관련 카페에도 며칠 전부터 길고양이 겨울 집 만들 스티로폼을 구하는 글이 올라왔고, 우리 집도 마당에 있는 길고양이 집을 겨울용으로 보강했다.

그간 캣맘 폭행 사건은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쇠파이프로 위협 당하기도 했고, 쓰레기통에 처박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드러난 일일 뿐 거의 모든 캣맘은 매일 어느 정도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쥐약을 놓겠다는 협박, ‘미친년’ 소리, 완력으로 겁주기 등. 밥그릇을 밟아 버리는 것은 애교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으슥한 곳에서 밥을 주게 되고 그게 다시 캣맘의 안전을 위협한다. 나도 동네 골목 몇 곳에 밥을 주는데 한곳이 특히 외진 곳이라 가족의 걱정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말. “가장 으슥한 곳이 우리에게는 가장 안전한 곳이야.” ‘우리’란 길고양이와 캣맘이다.

이 책은 저자가 새벽 신문을 배달하면서 만나는 길고양이를 기록한 책이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고양이의 매력을 찬양하거나 고양이를 피사체화 하는 책들 사이에서 몇 안 되는 우리나라 길고양이의 현실을 보여주는 책이다. 책에는 도시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실려 있다. 다른 책처럼 깨끗하고 우아한 고양이는 없지만 조금은 지저분하고 병들고 겁먹은 표정이라도 투덜대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주어진 삶을 견디는 아름다운 고양이로 가득하다.

사진에 집중하라는 것인지 책에는 고양이 각자의 사연이 없어서 아쉽다. 대신 저자의 블로그에는 고양이 사연은 물론 저자가 밥을 주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길고양이 밥 주기의 최전선에 있는 저자 또한 사람들과 잦은 갈등을 겪는다. 물론 저자는 남자라서 여자 캣맘이 당하는 위협의 정도에 비하면 훨씬 덜하겠지만.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이 못마땅한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게 목숨을 빼앗길 일은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이미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뜯지 않거나 쥐가 없어지고, 길고양이 TNR(포획해서 중성화 수술을 시킨 후 같은 자리에 방사하는 것)을 하면 길고양이 개체수가 늘지 않고, 싸우거나 우는 소리가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스티로폼 속에서 쉬고 있는 길고양이. 김보경 제공
스티로폼 속에서 쉬고 있는 길고양이. 김보경 제공

그렇기에 이번 캣맘 사건을 비롯해 비슷한 동물 관련 사건은 이제 혐오 범죄로 봐야 할 것 같다. 혐오는 이유 없이 그냥 싫은 것, 동물이나 여성 등 약자를 조롱하고 함부로 대하고 싶은 것, 분노와 화풀이 대상을 찾는 심리이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남을 조롱하고 짓밟음으로써 자존감을 찾으려는 혐오 심리는 폭발한다. 하지만 약자끼리 서로 미워하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책 속 길고양이들은 찬바람이 불면 서로 몸을 겹쳐 체온을 나누며 추위를 견딘다. 우리도 그들처럼 약자끼리 체온을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김보경 책공장 대표

참고한 책: 하루를 견디면 선물처럼 밤이 온다ㆍ김하연 지음ㆍ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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