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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방탄소년단, 소녀시대 노랫말이 가볍다고?… 인문학 렌즈로 보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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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방탄소년단, 소녀시대 노랫말이 가볍다고?… 인문학 렌즈로 보면 달라!

입력
2018.04.19 14:3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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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을 인문하다’

박지원 지음

사이드웨이 발행ㆍ624쪽ㆍ1만8,000원

방탄소년단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 한 장면. 멤버인 진이 독일어로 ‘Man muss noch Chaos in sich haben, um einen tanzenden Stern gebaren zu konnen(춤 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이라 적힌 문구를 보고 있다. 철학자 니체의 문장이다. 뮤직비디오 캡처
방탄소년단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 한 장면. 멤버인 진이 독일어로 ‘Man muss noch Chaos in sich haben, um einen tanzenden Stern gebaren zu konnen(춤 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이라 적힌 문구를 보고 있다. 철학자 니체의 문장이다. 뮤직비디오 캡처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은 ‘문학돌’로 불린다. 그들의 음악에 문학적 서사와 철학적 사유가 가득해서다. 방탄소년단의 노래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에서 멤버인 진은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란 글귀가 독일어로 적힌 벽 앞에 서 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1844~1900)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실린 문구다.

성장의 시작은 혼돈에서 비롯된다. 아이돌과 철학의 만남. 극강의 군무로 유명한 방탄소년단은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1877~1962)의 ‘데미안’에서 모티프를 따 이 곡에 메시지를 심었고, 소설 속 은유들은 곡과 뮤직비디오를 지배한다.

방탄소년단은 노래에서 ‘내 피 땀 눈물도 너의 것인 걸 잘 알고 있어’라며 나의 존재를 부정한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고 파괴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 바로 책에서 열 살 소년 에밀 싱클레어가 막스 데미안을 만나면서 겪는 일이다. 니체의 글을 본 진은 뮤직비디오에서 검은색 날개를 단 악마의 형상을 한 동상과 입을 맞춘다. 석진은 어린 싱클레어고, 동상은 데미안이다. 압권은 결말. 석진의 얼굴에 금이 가며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껍데기를 깨고 어른으로서 또 다른 나로 살아가야 하는 성장의 은유다. 이렇듯 방탄소년단은 고전을 읽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상 시대의 독특한 아이돌이다.

‘아이돌을 인문하다’는 기획된 상품(아이돌)의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노래를 왜 듣는지 모르겠다는 이들에게 날리는 카운터펀치다.
‘아이돌을 인문하다’는 기획된 상품(아이돌)의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노래를 왜 듣는지 모르겠다는 이들에게 날리는 카운터펀치다.

책은 아이돌을 ‘다른 방식’으로 읽는다. 수준 낮으며 영혼 없는 음악이란 편견에 맞서 인문의 무기인 문학과 철학으로 K팝을 사유한다.

동남아시아 재해 현장을 다룬 뉴스를 본 것이 계기였다. 홍수가 덮쳐 처참해진 집 책상에서 동방신기의 사진을 꺼낸 학생이 “힘들 때면 항상 이들의 음악을 듣곤 했다”는 말이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졌다. 재난이 할퀴고 간 절망의 끝자락에서 K팝이라니. 어떻게 K팝이 이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이유 없는 열광은 없다. 저자는 방탄소년단과 워너원 그리고 아이유 등의 음악을 들으며 특유의 성장 서사에 주목했다. 이들의 현실 고백을 깊숙이 들여다본 뒤 인문학적 시각으로 보통의 청춘과 시대의 고민에 다리를 놓는 식이다.

약속, 용기, 자유 그리고 책임까지. 다양한 키워드로 K팝을 살폈다. 팜므파탈과 ‘국민여동생’이라는 상반된 이미지 속 정체성 혼란을 다룬 아이유의 노래 ‘스물셋’에 대한 분석은 너무 팬레터 같지만, 트와이스의 히트곡 ‘치어업’이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식의 여성관을 은근히 재생산한다고 꼬집으며 분석의 균형을 잡았다. ‘치어업’은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쉽게 마음을 주면 안 되니, 남자에게 더 힘을 내 다가오라는 내용이 담긴 곡이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학내 집회에서 민중가요 대신 소녀시대의 히트곡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 문화적 변동을 다룬 본보 기사(‘다만세’가 ‘밀레니얼 세대’ 투쟁가 된 이유’ㆍ2016년 8월16일자 21면)를 비중 있게 언급하며 사회적 연대의 수단으로 아이돌 음악에 대한 기능도 주목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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