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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메시지는 개개인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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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메시지는 개개인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국가"

입력
2016.03.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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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 독막로 북카페 ‘빨간 책방’에서 만난 전대호씨가 헤겔 철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지난 25일 서울 독막로 북카페 ‘빨간 책방’에서 만난 전대호씨가 헤겔 철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헤겔 철학은 변증법, 곧 정반합(正反合)이다. 이제껏 널리 알려진 해석은 ‘닥치고 합’쪽이다. 정과 반은 합을 위해 존재한다. 이런 합은 곧 100% 순수한 주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히틀러의 마음 속에서 헤겔을 끄집어냈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그 죄 값을 물어 자신의 철학사 서술에서 아예 헤겔을 지워버리기도 했다.

‘합’보다 ‘정반(正反)’ 그 자체에 집중하는 해석은 이에 맞선다. 합이되 그 안에 정,반이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본다. 미국의 공동체주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의 ‘헤겔’(그린비)이 대표적이지만, 방대한 서술이 겁난다면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문학과지성사)을 집어 들어도 된다. 특유의 나른한 문체로 한병철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헤겔을 데리다나 들뢰즈, 또는 바타유 등이 가르쳐 준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어떻게? “사람들은 흔히 타자를 폭력적으로 붙들어 자기 소유로 삼는 것을 헤겔 사유의 중심 형상으로 이해하지만, 헤겔이 말하는 타자로부터 자기 자신으로의 화해로운 귀환은 그런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것은 오히려 나 자신을 희생하고 포기한 뒤에 오는 타자의 선물이다.”그렇기에 “헤겔에게 절대자는 무엇보다도 사랑을 의미한다.”

헤겔은 ‘히틀러의 아버지’가 아니라 ‘큐피트의 화신’이다. 그래서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배우 박신양이 김은정에게 던졌던 그 한마디, “내 안에 너 있다”는 헤겔 철학의 진수다. 다만, 사랑은 너와 내가 완전한 합일에 이르러 그 어떤 천둥, 번개에도 흔들림 없는 적요에 휩싸이는 일이 아니다. 내 안에 들어 있는 너를 끊임없이 느끼면서, 너 안에 든 나를 앓고 있는 너와 지속적으로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사랑은 아프다. 변증법의 합이란, 그렇게 아프고 불편한 일이다.

이제 자동적으로 한마디 나올 때가 됐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해석상의 문제는 어려운 말 늘어놓는 철학 전문가들에게나 재밌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 문제는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이다. 내 안의 너를 제거하지 않고 끌어 안는다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전대호가 비판 과녁으로 삼은 4인의 지식인. 왼쪽부터 김상환 서울대 교수, 이진경 서울과기대 교수,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 김상봉 전남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대호가 비판 과녁으로 삼은 4인의 지식인. 왼쪽부터 김상환 서울대 교수, 이진경 서울과기대 교수,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 김상봉 전남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렇게 보면 ‘헤겔주의자’를 자처하는 전대호가 ‘철학은 뿔이다’(북인더갭)를 쓰면서 김상봉(전남대) 이진경(서울과기대) 김상환(서울대) 이어령(전 이화여대 석좌) 교수를 지목해 비판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내 안에 너가 있으니 김상봉식의 ‘홀로주체’에 대비되는 ‘서로주체’는 성립하지 않으며, 단일 주체에서 벗어난다는 탈주체 전략은 세상 사람 모두 단일 주체에 얽매여있는데 나만 그렇지 않다는 비논리적 자만에 불과하게 되고, ‘우리’라는 울타리를 확인하기 위한 동ㆍ서양 비교론 따윈 제 꼬리 제 입에다 물고 빙빙 도는 헛일일 뿐이다.

책의 문장은 다소 절제된 것 같아 일부러 저자를 만났다. 그러나 예상보다 말 사이에 쉼표가 많았다. 골똘히 생각했고,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독막로 북카페 ‘빨간 책방’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대 물리학과 88학번인데, 시인으로 등단했고 독일 유학 때 헤겔을 공부했다.

“시는 중ㆍ고등학생 때부터 썼다. 그게 등단으로 자연스레 이어졌고. 물리학은, 그 때 이공계 학생이면 으레 그걸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대가 그런 시대가 아니었지 않나. 그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철학을 택했다. 석사 때는 칸트를 했고, 1996년 독일로 가면서 헤겔을 공부했다.”

-왜 헤겔이었나.

“일종의 도전의식이었다. 헤겔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경외의 감정을 가지고 어렵다고들 했다. 뭔가 큰 산 같았고 내가 한번 넘어서보고 싶었다.”

-이번 책은 넘어섬의 결과인가?

“그렇다기보다 이제 좀 뭔가가 보이는 것 같다는 오만함이 생겼다는 정도로 해두자. 원래 ‘정신현상학’을 완역한 뒤 본격적으로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는데, 번역 작업이 자꾸 늦어지면서 이 책을 먼저 쓰게 됐다.”

-헤겔주의자로 자처하며 나선 것이 슬라보예 지젝의 입장과 겹쳐보인다.

“안 그래도 내 주장을 들어본 지인들이 ‘헤겔의 복권’을 선언한 지젝과 비슷하다는 말들을 하더라. 그런데 내가 지젝을 제대로 보질 않아서 뭐라 답하긴 어렵다.”

-‘변증법의 합’이 곧 헤겔이라는 주장을 깨는 게 출발점이다.

“깬다기보다 보완해주고 싶었다, 도와드리고 싶었다고 하자. 흔히 변증법의 합을 강조하면서 ‘헤겔은 동일성의 철학자’라 부른다. 김상환은 변증법의 합을 두고 국가정신이요 성령과도 같은 것이라 얘기하는데 이건 정반대로 해석한 완전한 오독이다. 난 변증법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하나는 맞선 둘의 얽힘이다.’ 변증법의 합이란 ‘고요한 하나, 절대적인 일자(一者)’가 아니라 맞서 있는 둘 사이의 얽힘이다. 오직 합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동물이다. ‘나’이면서 내가 아닌 뭔가를 내 안에서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헤겔이 변증법으로 얘기하려 했던 것은 자기 안의 이질성을 느끼면서도 하나의 합으로 존재하는 인간, 사회, 국가라는 주체의 복합성이었다.”

-그런 주체는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가지는가.

“단적으로 헤겔은 ‘개인이 공인이다’라는 표현을 쓴다. 각 개개인 안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는 말과 통한다. 그렇기에 ‘진리가 전체다’라는 헤겔의 말은 전체주의자의 선언이 아니라 ‘모두가 진리다’라는 민주주의자의 선언이다. 헤겔이 실제 의도했던 바는 개개인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국가였다. 이런 국가가 절대자라는 말은 곧 국가 안의 개개인 모두가 절대자라는 말이다.”

-이런 해석이 왜 틀어졌을까.

“나 혹은 우리라는 주체 안의 갈등과 대립을 극복되어야 하는 나쁜 그 무엇으로 자꾸 전제하기 때문이다. 개인, 사회, 국가 안에는 반드시 대립과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중요한 건 이를 깔아뭉개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김상환은 대립과 갈등 상황이 오면 자꾸만 외부의, 제3의 매개자를 끌어들여 해결하려 든다. 헤겔주의자로서 나는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짊어지는 것을 넘어서는 권위란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지식인의 자의식이 투영된 것 아닌가. ‘나, 지식인’은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남들과는 뭔가 다른 주체라는 자의식.

“이어령을 비판하면서 내가 ‘외부인 놀이’라 이름 붙인 현상이다. 문제가 터지면 비상이요,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그러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외부의 제3자를 끌어들인다. 한국 사회에서 출세란, 권력자 되기란 곧 ‘그럴 듯한 외부인 되기’다. 갈등을 품고 불편을 감내하며, 우리 손으로 개척하자는 근대의 태도와 완전히 어긋난다. 이진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들 보고 당신은 자유로운가 물으며 코드에 묶여 있다고 하는데, 나는 거꾸로 묻고 싶다. 그러는 당신은 자유로우며 코드에 묶여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 그런 주장 때문에 한때 운동권의 명사였던 인물임에도 자꾸만 현실정치와 멀어져 가는 태도가 엿보인다. 물론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책에서는 일제의 영향을 언급했다.

“일본 교토학파의 니시다 기타로의 관점이 경성제대 등을 통해 한국에 자리를 깊게 잡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 철학의 출발은 서양의 충격에 대한 대응이다. 서양과 다른 우리는 뭔가, 이게 기본적 관점이다. 가령, 김상봉은 서구의 홀로주체에 대비되는 우리의 서로주체를 내세우고, 김상환도 ‘자리’나 ‘장소’의 문제를 계속 언급한다. 이어령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식의 얘기는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안 맞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 김상봉의 서로주체론도 결국 주체개혁론이라면, 이광수ㆍ박정희식의 민족개조론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헤겔이 줄 수 있는 교훈은 뭔가.

“간단하다. 변증법이란 디알렉틱(Dialektic), 곧 대화다. 누가 대화하느냐. 정과 반이 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지양’으로 번역되는 아우프헤벤(Aufheben)은 ‘곡식 따위를 거둬들인다’로 해석돼야 한다. 지양한다는 건 정과 반이 소멸된다는 게 아니라 거둬들여져서 창고에 잘 저장되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의 생각을 자기의 입으로 말해야 한다. 지도자나 선각자는 없다. 희망은 그런 개인이며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게 헤겔의 메시지이고,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좀 허무한 감이 있다. 딱히 헤겔이 아니어도 가능한, 상식적인 얘기 같다.

“데카르트가 근대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이유가 뭔가. ‘참ㆍ거짓 구분은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 능력’이라 말했다. 스스로도 ‘내가 남보다 똑똑하다 생각해본 적 없다’고 평했다. 고대 희랍철학자들은 뭐라고 했는가. ‘철학이란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일깨워줄 뿐’이라고 했다. 그게 근대철학이요, 곧 민주주의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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