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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엄마의 분리불안

입력
2016.03.2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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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개월 된 아들은 요즘 어린이집에 적응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탓에 아침이면 울음소리가 끊일 날이 없다. 한번 시작된 아이의 울음은 내가 얼굴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길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겨우 밖으로 나오면 다음에는 무언 시위가 시작된다. 나의 온갖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화단의 나뭇잎만 만지작거리며 말없이 서 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잰 걸음으로 어린이집에 간다. 다시 울음이 터진 아이를 선생님께 안겨주고 밝게 인사한 뒤 문을 닫는다.

누구나 겪는 적응 과정이라지만 현실로 마주하니 만만치가 않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데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와 어머니를 만났다. 아이의 표정이 밝아 보여 물어보니 어제는 낮잠까지 자고 4시에 하원했다고 알려준다. 2시간 후면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내 상황과는 정반대였다. 덜컥 조바심이 났다. 이대로 적응에 실패하면 어쩌나 싶어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과정이 궁금했다. 그곳 생활과 선생님, 친구들에게 점차 익숙해지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아들의 까다로운 성격도 걸림돌이었다. 찾아보니 관련된 논문이 꽤 많았다. 흥미롭게 읽어나가던 중 아이의 기질 별로 다른 어린이집 적응과정에 대해 연구자가 현장에서 직접 함께하며 작성한 논문을 발견했다. 날짜 별로 아이의 행동변화를 구체적으로 기술해 놓은 덕에 머릿속에서 아이의 적응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논문에 따르면 자기중심적이고 주관이 강한,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는 놀잇감이 적응의 촉매제 역할을 하며 놀랍게도 적응 후반에는 놀이를 제안하고 주도한다고 한다. 이때 쌍을 이루는 친구가 순한 기질의 아이들이다. 일찌감치 선생님과 애착을 형성해 엄마와 잘 떨어지는 순한 아이들은 초반에 아이들의 적응을 돕는다고 한다. 우는 아이를 안아주거나 놀잇감을 건네주는 행동 등을 말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고 나니 불안감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물론 논문의 내용이 모두 정답일 수는 없다. 다만 문 닫힌 어린이집 안에서 적응기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답답했는데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남편에게 이 내용을 설명했더니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내놓는다. 나의 행동이 지나친 집착이라며 아이가 크면 내가 ‘헬리콥터 맘’이 될지도 모른다고 일러준다. 듣고 나자 아차 싶었다. 전업맘으로서 아이와 24시간을 함께하다 처음으로 떨어지면서 불안에 떤 건 오히려 나였다. 검은 공백으로 변해버린 아이의 시간이 궁금해 자료에 의지해서 내 멋대로 채워 넣은 것이다. 그렇게라도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방식만 다를 뿐 자녀 곁을 종일 맴돌며 온갖 일에 다 참견하는 ‘헬리콥터 맘’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항상 아이를 낳으면 자유롭게 키우겠다고 말했는데 역시 모든 일은 닥쳐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었다.

불안의 원인은 대개 무지에서 비롯된다. 모르니까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려고 한다. 연인의 마음을, 미래를 알려 한다. 아이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엄마들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도 시도 때도 없이 선생님께 전화를 하고 아이의 사진을 요청한다. CC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거나 직접 찾아가서 선생님의 수업을 몰래 지켜보는 경우도 있다. 같은 고민에 빠진 엄마로서 그 심정만은 십분 이해가 가지만 모두 마음이 지나쳐서 나온 잘못된 행동들이다. 이와 같은 행동은 아이의 적응에 도움도 되지 못할뿐더러 3월 한 달 정신 없을 선생님들을 더 지치게 만든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이만의 시간도 함께 자란다. 어린이집이라는 공간이 아마 그 시간의 처음이리라. 엄마와 처음 떨어진 아이만큼 아이와 처음 떨어진 엄마에게도 적응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아이만의 시간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이제 엄마도 본인의 시간을 찾을 때다. 그토록 바라왔던 자유시간이지 않은가.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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