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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종화 추구하는 실용적 아나키즘, 자본주의 갱생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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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종화 추구하는 실용적 아나키즘, 자본주의 갱생의 길”

입력
2016.01.2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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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 아나키즘+급진적 자유주의

문명 전환의 사상적 토대 될 수 있어

기득권 구획 경계 넘나드는 잡종사회 위해

개인, 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무관심해야

김성국 교수는 최근 부산 자택에서 인터뷰를 갖고 "특정가치를 절대화하거나 맹신하는 순종화 추구가 뚜렷해지는 것은 전근대로의 역행"이라고 지적했다. 부산=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김성국 교수는 최근 부산 자택에서 인터뷰를 갖고 "특정가치를 절대화하거나 맹신하는 순종화 추구가 뚜렷해지는 것은 전근대로의 역행"이라고 지적했다. 부산=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진정한 아나키스트라면 자본주의에 대한 저주의 굿판을 벌이는 대신에 적과 동행하는 길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아나키스트 반국가주의에 입각해 국가권력 체계를 올바르게 길들이면 그때 자본주의는 무소불위의 착취자가 아니라 개인의 잠재력과 욕구를 개발하는 봉사의 이념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

최근 ‘잡종사회와 그 친구들’(이학사)를 펴낸 아나키즘 연구자 김성국(69) 부산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책 첫 머리에 “나는 아쉽고 두렵지만 혁명적 계급투쟁적 아나키즘과 결별하려 한다”고 썼다. 흔히 주류 아나키스트들은 자유주의를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보수주의’로 여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아나키즘의 실용화, 자유주의의 급진화가 내는 시너지가 문명전환을 위한 사상적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평생 아나키즘을 연구해 온 그는 “미제스, 하이에크, 포퍼의 자유주의를 재독하며 최소국가론을, 자본주의 자체 수정 가능성을 수용했다”며 “(이 지적 모험은)어쩔 수 없다. 잡종사회의 도래가 이 길로 가도록 나를 설득했다”고 썼다.

잡종사회는 구분과 경계 자체를 지양하고 타협, 조화, 절충, 균형을 최고 미덕으로 간주하는 사회다. 이 사회의 도래를 위해선 ▦타협적 탈국가주의자 ▦절제적 탈물질주의자 ▦협동적 개인주의자 ▦상대적 허무주의자 ▦현세적 신비주의자 등 다섯 친구가 필요하다. 파슨스의 네 가지 기능적 요건과 음양오행의 개념을 감안했다. “순종을 지향하는 태도”자체를 치료 대상으로 보는 그는 의도적으로 하이브리디제이션(hybridization) 대신 잡종(雜種)이란 단어를 택했다.

김 교수는 올해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한국 아나키즘 3부작을 완성할 계획이다. 2007년 내놓은 ‘한국의 아나키스트’가 과거, 이번 책이 미래, 5ㆍ18 등 항쟁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국가폭력에 주목한 차기작이 현재에 해당한다. 그를 부산 자택에서 만났다.

-오래 전부터 올해로 3부작 완성 시한을 못박았는데.

“점점 과거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70세 이전에 학문 여정을 정리해보겠다고 생각했다.”

-책이 표방한 ‘아나키스트 자유주의’가 형용모순이라고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런 분들이 생각하는 자유주의는 본래 속성과 달리 자본주의를 정당화하고 지나치게 보수주의화 체제 내화한 자유주의다. 엄밀히 자유주의는 본래 각종 체제적 억압에 반대해야 한다. 아나키즘 내부는 본래 실용주의적, 개혁주의적 노선이 있었다. 자유주의와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자유는 본래 그 속성이 같고 인간의 속성과도 맞아떨어진다.”

-아나키즘 실용화를 통해 ‘자본주의 갱생’이 가능하다고 봤는데.

“자본주의 만능론 혹은 만악론은 안이하다. 그것은 안이한 결정론이다. 오히려 국가, 민주주의나 독재주의, 종교, 과학, 도덕, 인간의 심성이나 욕망 자체, 자연 등이 주된 원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 곳곳에 노장, 불교철학 등 동양사상이 인용된 점이 눈에 띈다.

“마르크시즘에 비해 상대적으로 퇴화한 아나키즘이 노자나 장자의 인간해방 철학에서는 평화롭지만 강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과거의 혁명적 전략을 버리고 다양한 실천으로 국가 해결주의, 국가 만능주의를 해소해 나갈 수 있다고 봤다.”

-국가에 대한 신념, 환상은 꽤 공고해 보인다.

“교육을 그렇게 받아 어쩔 수 없다. 국가가 모든 문제를 공정하게 해결할 것이라는 착각, 문제는 정권교체나 법개정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 이 체제가 아니면 모든 게 난장판이 될 것 같아 ‘미워도 다시 한번’ 연연하는 미련이 있다. 국가권력, 독점권력은 이 정서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러니 청사진을 남발하고 자신들이 해결사라 장담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 부패와 무능을 낳는다. 정치는 정치가의 선의가 아닌 우리 세금으로 이뤄진다. 법은 정치가가 아니라 여러 세월에 걸쳐 시민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최소국가론 시민권력의 확대를 말하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복권을 주장했는데.

“잡종사회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재발견이 필수다. 각 개인이 주체성을 가지고 국가권력이 요구하는 부당한 것에 관심을 지니지 않겠다는 주관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정치적 무관심이 그런 차원에서는 긍정적 신호다.”

-‘헬조선’ 담론도 마찬가지인가.

“참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면 환멸, 회의가 극에 달한다. 국가만능주의, 정치제일주의, 독점권력을 재고하게 한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부정적 현상만은 아니다. 독점자본과 권력은 패거리가 된다는 점을 직시하게 되는 과정이다.”

-“과연 각 시민 개인은 면책사유를 가지고 있느냐”고도 했는데.

“허무주의적 색채가 깔린 거다. 과연 권력만 사라지면 다 잘 될 것인가. 만약 인간의 속성 자체가 이렇게 생겨먹었다면 어쩌겠냐 하는 고민이다. 집단보다는 개인에게 관심을 부여하고 국가가 아니라 내가 주인이라는 의식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잡종사회의 지향점은.

“기득권에 의해 구획된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할 수 밖에 없는 경계나 규율은 그만큼 잘못된 부당한 경계 아니겠나. 진영논리도 그 일종이다. 인간의 무지론, 부지론, 미지론을 늘 생각해야 한다. 한국사회를 잠식한 절대적 진영논리를 벗어나지 않고서는 중용의 덕도 탈근대 문명사회도 오지 않는다. 소위 386세대가 지나온 엄혹한 시대에는 투쟁의 전략으로 진영논리가 불가피했을지 몰라도 그런 시절은 갔다.”

-동아시아를 문명 전환의 무대로 주목했는데.

“중국은 특히 굉장한 잡종화의 나라다. 과거부터 서양문화와 수 많은 외래족의 문명이 뒤섞였고 세계에서 전례 없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통합하려 하고 있다. 잡종화의 시도가 일본의 탈아입구, 한국의 냉전 멍에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탈근대 문명의 도덕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부산=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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