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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덩의 계승자들이 바라보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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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덩의 계승자들이 바라보는 한국

입력
2014.08.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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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중국에서는 지난주 22일이었던 덩샤오핑(1904~1997)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크고 작은 다양한 행사가 거행됐다. 중국 대중들의 추모 열기는 물론 시진핑 주석도 20일 강연을 통해 덩을 ‘개혁ㆍ개방과 현대화 건설의 총설계자’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의 창시자’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높은 찬사를 보냈다. 서구열강들에 의해 갈라지고 쓰러졌던 중국을 다시 G2의 강대국으로 일으켜 세우는데 기여한 덩의 업적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그가 보여준 ‘장기적 전략’과 ‘인내’에 관한 부분은 지금의 한국이 다시금 관심을 갖고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덩의 대표적 업적인 개혁ㆍ개방을 한번 살펴보자. 많은 이들이 중국과는 다르게 북한이 개혁ㆍ개방 정책을 실시할 수 없는 것은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내부 정치적 요인도 있지만, 고립돼 주변국들과 대립하고 있는 북한의 외부 환경이 당시 우호적이었던 중국의 주변 환경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실 덩이 개혁ㆍ개방 정책을 시작한 70년대 말은 70년대 초 미중 데탕트의 영향으로 주변 환경이 60년대에 비해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구소련과의 관계는 당연히 더 악화됐으며, 개혁ㆍ개방 정책이 실시된 직후인 79년부터는 베트남과 전쟁을 치렀다. 대만과는 여전히 적대관계였으며 79년 중국과의 정식 국교수립 이후에도 미국은 의회를 중심으로 대만을 보호하고 있었다.

여기서 덩은 주어진 조건하에서 ‘장기적 전략’의 핵심인 개혁ㆍ개방의 성공을 위해 주변 환경을 최대한 호의적으로 만드는 치밀한 외교를 시작한다. 덩은 개혁ㆍ개방정책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78년 말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 개최 4개월 전에 미리 일본을 방문한다. 그는 일본에게 한 수 배우러 왔다는 겸손과 일본의 현대화를 극찬하며 일본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선진 경영기법을 끌어오기 위해 노력했다. 79년 1월에는 중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덩은 텍사스주 휴스턴의 로데오 경기장에서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미국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어서 국경 분쟁으로 물리적 충돌까지 있었던 구소련과 외교적 화해를 시도했고,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앞세워 ‘철의 여인’ 대처가 이끄는 영국과의 홍콩 주권 반환 협상을 순조롭게 처리했다.

개혁ㆍ개방을 통한 경제발전과 이를 기반으로 한 국력배양의 장기적 목표는 덩에게 끊임없는 ‘인내’ 도 요구했다. 한 예로 93년 7월 홍해에서 미 7함대가 중국의 화물선 ‘은하호’를 향해 화학무기 원료가 실려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선박 수색을 요구했다. 1개월 넘게 대치하다 결국 수색이 이뤄졌지만 화학무기 원료는 나오지 않았다. 중국 내부는 들끓고 반미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나 덩은 중국이 아직은 국력을 키워야 하며 미국과 대립할 때가 아니라며 인내했다. 이후에도 덩과 그의 계승자들은 ‘장기적 전략’에 대한 확고한 신념하에 인내를 계속했다. 이들은 1999년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대사관에 대한 미국의 ‘오폭’과 같은 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 신청을 거절당한 일, 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났던 일본의 역사왜곡, 베이징 올림픽 성화릴레이가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제지당한 일 등을 대표적인 치욕사례로 꼽지만 강하게 항의하며 중국의 뜻을 알릴 뿐 단절하지는 않으며 인내했다.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치른 덩이 근대에 들어 서구열강들이 중국에 어떤 일을 했는지, 2차대전 당시 일본의 만행이 어떠했는지, 미국이 왜 장제스의 국민당을 지원했고 지금의 대만을 보호하고 있는지 모른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덩의 ‘장기적 전략’과 ‘인내’가 이제는 유럽이 중국의 눈치를 보고, 미국과 대등하게 경쟁하며, 일본에 반격하는 중국을 만들어 냈다. 반면 5년 아니 실질적으로 2~3년의 기간을 두고 결과를 가늠하는 한국의 외교와 국가전략의 현실은 암담할 뿐이다. ‘장기적 전략’의 부재는 국가 리더들의 ‘인내’는 물론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적 ‘인내’ 또한 당연히 이끌어 낼 수 없다. 과연 개혁ㆍ개방을 이끌어온 중국의 지도자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눈길이 어떨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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