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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나는 하늘을 나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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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나는 하늘을 나는 중이에요"

입력
2017.08.3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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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하늘 나라로 간 할아버지 손을 잡고 함께 난다. 현실과 상상, 두 개의 세계가 정답게 어깨를 겯는다. 웅진주니어 제공
할머니가 하늘 나라로 간 할아버지 손을 잡고 함께 난다. 현실과 상상, 두 개의 세계가 정답게 어깨를 겯는다. 웅진주니어 제공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

주디스 커 글,그림ㆍ공경희 옮김

웅진주니어 발행ㆍ32쪽ㆍ1만2,000원

노령 인구 증가, 이른바 고령화는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미디어는 연일 새로운 이슈를 쏟아낸다. 정년 연장, 국민연금 수급, 일자리 창출, 고독사, 치매, 복지 예산… 쏟아지는 이야기 속에서 노인은 객체다. 풀어야 할 숙제고 짊어져야 할 부담이며 뒤늦게 몰아 받거나 대신 갚아야 할 청구서다.

그런 까닭에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를 읽는 기분은 더욱 특별하다. 올해 아흔넷이 된 영국 작가 주디스 커는 지금으로부터 오십 년 전에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엄마와 어린 딸이 티타임을 즐기려는 순간 호랑이가 초인종을 눌렀고, 예의바른 먹보 호랑이를 환대하다보니 먹을거리가 다 떨어져서 온 식구가 저녁에 외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깜찍한 이야기다. 아이 키우고 살림하느라 행복하면서도 고단했던 작가가 특유의 유머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렇게 자신의 일상에서 길어 올린 상상력으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온 노련한 이야기꾼이 평생의 반려자와 사별하고 아흔의 문턱에 다다라 이 책을 펴냈다.

"사람들은 내가 홍차를 기다리는 줄 알아요." 은발의 할머니가 소파에 얌전히 앉아 있다. 연한 풀빛 원피스, 보랏빛 카디건이 곱다. 책장을 넘긴다. 이런, 할머니가 하늘을 날고 있다! 빨간 재킷, 노란 타이로 멋을 낸 할아버지와 손을 맞잡고 하늘을 난다. 할아버지 어깨엔 앙증맞은 날개가 달려 있다. "사실 나는 헨리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나는 중이에요. 내 사랑 헨리는 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 살아요."

남편 헨리는 먼저 하늘나라로 갔지만 네 시부터 일곱 시까지는 외출할 수 있단다. 그래서 둘은 날마다 티타임에 만나 이제껏 못해 본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고, 돌고래와 수상스키를 타고, 스핑크스와 술잔을 나누며 수다를 떨고, 유니콘과 친구가 되어 낯선 도시의 하늘을 난다. 어제는 인어를 만났고, 내일은 달에 소풍 가기로 했다.

"사람들은 내가 낮잠을 자는 줄 알아요. 하지만 모르는 말씀!" 현실과 상상, 두 개의 세계가 정답게 어깨를 겯는다. 추억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사랑이 무르익어 간다. 정말 상상도 못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할아버지와 작별 키스를 나누고 돌아선 할머니 앞에 찻잔이 놓인다. 진하게 우린 홍차에 설탕은 두 스푼. 아흔 살의 삶, 아흔 살의 감성과 상상력은 이토록 화사하다. 이 사랑스러운 그림책은 우리에게 눈, 귀 어둡고 손발은 느려졌으나 여전히 꿈꾸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보여준다. 잊지 말자.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비바!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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