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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상호주의로서의 정의(正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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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상호주의로서의 정의(正義)

입력
2018.06.07 19:00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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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주의는 응분(應分)과 더불어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정의관들 중 하나로, 개인이나 집단들이 혜택과 부담을 비슷하게 (또는 처지에 비례하여) 주고받는 것이 옳거나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상호주의는 놀라운 변용 능력 때문에 상이한 시대와 문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작동해왔는 바, 지금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부터 국가 간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우정을 예로 들어보자. 두 친구 아량이와 인색이가 있다. 이들은 가정형편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다니는 직장도 비슷하다. 하지만 아량이는 성품이 후한 데 반해 인색이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구두쇠다. 아량이는 인색이와 만났을 때 식사도 사고 커피도 사는 등 아낌없이 호의를 베푼다. 반면 인색이는 일방적으로 받기만 할 뿐 아무런 답례도 하지 않는다. 이 경우 아량이와 인색이가 계속해서 우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량이는 인색이가 자신을 친구로 존중해주는지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될 것이고 둘 사이의 우정도 금이 갈 공산이 크다.

서로 형편이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도 상호주의는 작동한다. 부유한 친구 풍성이와 가난한 친구 빈곤이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풍성이는 빈곤이와 만날 때 훌륭한 음식을 대접한다. 반대로 빈곤이는 풍성이에게 값비싼 식사를 대접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풍성이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받을 때마다 고마움을 표하고 자신의 능력에 맞는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이 경우 이 둘 사이의 우정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큰 무리 없이 지속될 것이다. 풍성이는 빈곤이의 진심어린 마음에 고마워하며 그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풍성이와 빈곤이 사이의 우정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그것은 상호주의가 엄밀한 1대 1의 비율로 작동하지 않고 당사자들의 처지에 비례하는 주고받음을 통해 작동한다는 점이다. 값비싼 식사를 대접한 부자 친구에게 가난한 친구가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하거나 정성스럽게 소박한 식사를 대접하는 것만으로도 상호주의는 성립한다. 서로를 소중한 친구로 존중해주는 한 주고받는 물질이나 서비스에서 불균형이 생겨도 우정은 지속될 수 있다.

상호주의는 상거래 행위를 포함한 다양한 인간관계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관철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들은 대개 자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기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는 상호주의가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지금의 부모들 역시 어렸을 때는 그들의 부모로부터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다. 그러므로 부모 자식 사이에는 내리사랑 형태의 상호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동양사회에서는 부모의 사랑에 대한 보은의 예법인 효가 상호주의를 반영하기도 했다.

공동체문화의 쇠퇴와 개인주의 문화의 흥기는 세대 간에 작동해온 수직적 상호주의를 새로운 상호주의로 대체하고 있다. 사람들은 젊을 때 번 소득의 일부를 세금으로 국가에 납부하거나 연금보험 형태로 저축한다. 그렇게 마련된 재원의 상당 부분은 지금의 고령 인구를 부양하는 데 쓰인다. 그리고 젊은 세대가 고령에 접어들면 다음 세대가 비축한 재원으로 노후생활을 보장받는다. 이처럼 새로운 상호주의는 국가 제도와 정책을 매개로 간접적으로 작동한다.

국제관계에서도 어김없이 상호주의는 작동한다. 경제적 관계에서든 군사안보적 관계에서든 상호주의 원칙이 깨지면 해당 국가들은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 동안 남북한 관계가 심하게 삐걱거려온 것도 근본적으로는 상호주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실무회담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을 것을 최대한 공정하게 조정하는 것이 실무회담의 관건이다. 물론 부자 친구와 가난한 친구 사이에서와 같이 북미 사이에 주고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대등할 필요는 없다. 각자 입장에서 주고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면 합의가 성사되고, 그 합의의 순간에 바로 상호주의가 구현되는 것이다. 돌아가는 사정을 두고 볼 때 북한의 완전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체제보장(CVIG)의 빅딜이 현 시기 북미 사이에 성립될 수 있는 최선의 교환이 될 듯싶다. 이와 같이 국제관계에 적용되는 상호주의는 대부분 관련 국가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성립된다는 점에서 국가 간 전략적 균형을 찾는 문제와 구분하기 어렵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상호주의의 규범적 힘은 그것이 함축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상호존중의 태도에서 나온다. 그런 태도가 나의 이익과 상대방 이익을 함께 고려하도록 유인함으로써 상호 양해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동서고금의 모든 현인들이 상호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 황금률을 인륜의 도(道)요 모든 지혜의 원천이라 부르는 이유인 것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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