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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견] 한국 근현대사의 증인, 서울역 구(舊)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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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견] 한국 근현대사의 증인, 서울역 구(舊) 역사

입력
2018.03.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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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역사의 발견’은 도심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지하철ㆍ전철역 역사(驛舍)들을 역사(歷史)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서울역 신 역사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역 신 역사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쾅!’

1919년 9월 2일 경성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 앞. 제3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탄 마차 쪽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수류탄 터지는 소리였다. 목표는 사이토 총독이었다. 그러나 수류탄은 사이토 총독의 마차를 지나쳐 뒤편 마차에 명중했다. ‘오발탄’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남성이 혼비백산한 군중 속에서 태연한 표정으로 도포 자락을 정리했다. 수류탄을 던지면서 옷 매무새가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그는 왈우(曰愚) 강우규. 64세. 황혼을 넘긴 나이였다.

‘사이토 마코토 암살 미수 사건’의 결말은 이렇다. 도피 생활을 하던 강우규는 친일 경찰에 붙잡혀 1920년 11월 교수형을 당했다. 그러나 99년이 지난 지금, 강우규는 여전히 서울역 구(舊) 역사 앞에 살아 있다. 동상(銅像)의 모습이지만 기개만큼은 여전하다. 서울시는 2011년 강우규의 의거를 기념해 2번 출구 앞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2번 출구는 그가 사이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진 곳으로 알려진 장소다.

왈우 강우규 동상. 양원모 기자
왈우 강우규 동상. 양원모 기자

올해로 118살을 맞은 서울역 구 역사는 발길 가는 곳이 곧 역사적 체험 장소가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 개통 1년 뒤인 1900년 7월 ‘남대문 정거장’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구 역사는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 대한민국까지 한국 근ㆍ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증인이었다.

10평 남짓 정거장이 ‘경성역’으로 거듭나기까지

남대문 정거장 시절, 약 33㎡(9.9평) 규모 목조 건물에 불과했던 구 역사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건 1925년이었다. ‘경성역’으로 이름이 바뀐 구 역사는 1922년 일본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주도로 유명 건축가 츠카모토 야스시(塚本靖) 등이 설계에 참여해 3년 만인 1925년 9월 완공됐다.

이전까지 경성역의 모델은 일본 도쿄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스위스 루체른(Luzern) 역의 구 역사를 참고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 루체른 역사는 ▦돔 형태 지붕 ▦본채(중앙 홀)에 붙은 2개의 곁채 등 서울역과 외형이 상당히 비슷하다. 루체른 구 역사는 1971년 화재로 정문만 남기고 전소됐다. 현재 역사는 1991년 새로 지은 건물이다.

루체른 역(사진 왼쪽 건물) 구 역사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루체른 역(사진 왼쪽 건물) 구 역사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역 구 역사 모습. 위키피디아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역 구 역사 모습. 위키피디아

경성역은 ‘국내 최초’ 타이틀을 2개 보유하고 있다. 1925년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인 ‘서울역 그릴’이 경성역 2층에 문을 열었다. 1936년 우리나라 최초의 급행열차 ‘아카쓰키(曉)’호가 경성역에서 처음 시동을 걸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아카쓰키호는 서울에서 부산을 6시간 40분 안에 주파할 수 있었다. KTX(약 2시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무려 80년 전 일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경성역은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역사학자 신정일이 쓴 ‘다시 쓰는 택리지(2012)’에 따르면 당시 경성역 앞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있었는데, 이 탑은 식민지 조선 사람들의 시간 관념을 180도로 바꿔놨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해가 뜨고 지는 시점에 따라 하루 24시간을 구분했지만, 탑이 생긴 후에는 시ㆍ분ㆍ초 단위로 24시간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런 관념이 확산하는 데는 열차 이용의 대중화도 한 몫 했다.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현재 몇 시 몇 분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화물, 여객 운송’ 중심지로 자리잡아

경성역은 해방 이후인 1947년 서울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정부가 식민지 조선의 수도 이름인 ‘경성’을 일제 잔재로 보면서다. 서울역은 한국전쟁(1950~53년)을 거쳐 화물, 여객 수송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며 50년대 우리나라 최대의 역으로 떠올랐다. 수도 서울의 발전과 함께 화물, 여객 수송량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모리스 먼로씨가 촬영한 1950년대 서울역 전경. 연합뉴스
한국전쟁 참전용사 모리스 먼로씨가 촬영한 1950년대 서울역 전경. 연합뉴스

서울역은 1950년대 이후 여러 개의 건물로 재편됐다. 1957년 남부역사, 1969년 서부역사가 신설됐다. 남부역사는 2004년 신 역사로 편입됐다. 서부역사는 재시공을 거쳐 최근까지 경의선 역사로 활용됐다. 서부역사는 원래 경의선과 서울 외곽(능곡~의정부)을 가로지르는 교외선 고객을 위해 지은 역사였다. 그러나 2004년 교외선이 여객 영업을 중단하면서 복선화한 경의선만 여객용 노선으로 남게 됐다.

서울역의 몸집이 커지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대표적인 게 ‘서울역앞역’ 사건이다. 1974년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 노선 1호선에는 서울역 구 역사 앞을 지나는 역이 있었는데, 역 이름이 ‘서울역앞’이었다. 문제는 시민들이 서울역 구 역사는 서울역이라 부르고, 지하철 서울역은 ‘서울역앞역’이라는 불러야 하는 번거로운(?) 상황이 됐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1985년 개통된 지하철 4호선에도 ‘서울역(앞)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앞’ 부분에 괄호만 추가한 것. 결국 철도청(현 KORAIL)이 서울역 구 역사, 1호선 서울역, 4호선 서울역을 모두 ‘서울역’이라 부르기로 결정하면서 혼란은 일단락됐다.

기차역 수명 다한 뒤에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서울역 구 역사는 2004년 1월 신 역사가 완공되면서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을 다 했다. 하지만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맥아더 장군 명언처럼 건물로서의 가치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2007년 8월 코레일로부터 구 역사의 소유권을 이전 받은 문화체육관광부는 구 역사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개장하기로 결정했다. 문체부는 같은 해 11월 ‘구 서울역사 복합문화공간화 조성 사업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약 8개월 간 설계 작업을 거쳐 2011년 8월 ‘문화역 서울 284(이하 문화역 284)’라는 이름으로 구 역사를 새롭게 개장했다. 이름에 붙은 284는 구 역사의 사적 번호다. 구 역사는 1981년 역사적 가치를 인정 받아 사적 제284호로 지정됐다.

현재 문화역 284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전시가 한창이다. ‘두 번의 올림픽, 두 개의 올림픽’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18년 평창 올림픽을 통해 올림픽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서울 올림픽과 평창 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의 인터뷰 영상, 역대 올림픽 포스터, 서울 올림픽 관련 굿즈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 기간은 오는 18일까지다.

지난달 9일부터 복합문화공간 '문화역 서울 284'에서 진행 중인 '두 번의 올림픽, 두 개의 올림픽' 전시장 모습. 양원모 기자
지난달 9일부터 복합문화공간 '문화역 서울 284'에서 진행 중인 '두 번의 올림픽, 두 개의 올림픽' 전시장 모습. 양원모 기자

서울역 서부역사 교차로 근처에서 시작돼 지하철 4호선 회현역으로 이어지는 공중 산책로 ‘서울로 2017’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문화역 건물에서 빠져 나와 염천교 방향으로 50m 정도만 걸으면 산책로 전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서울역 관계자는 “문화역 284는 역사적, 공간적, 도시적 상징성이 담긴 곳”이라며 “온 국민이 서로 소통하고, 즐기는 공간이면서 미래를 향한 문화생산의 거점이 되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남우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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