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2030 세상보기] 류샤오보의 아이러니

입력
2017.07.21 14:49
0 0

아직 여물지 못한 시대엔 남을 조롱하고 경멸을 드러냄으로써 갈채를 받을 수 있었다. 사적인 보복이나 결투를 일삼던 오랜 옛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연히 남을 모욕하는 행위가 용감함의 징표이자 명예로운 저항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젊은 류샤오보의 시대가 그랬다. 학생 때부터 그는 유명인들을 거칠게 비판함으로써 이름을 날렸다. 당나라 때의 시성(詩聖)부터 문혁의 상흔을 묘사하는 작가까지, 중화 전통의 복원을 시도하는 학자부터 실용을 주창하는 신진관료까지, 그는 공격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나온 문장은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종종 상대의 사소한 부분을 침소봉대했고 인신공격성 막말을 일삼았다.

청년세대는 그런 과격한 조반(造反)에 열광했다. 수백 명의 청중이 류샤오보의 학위논문 심사를 보려고 몰려들었다. 그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새파란 애송이가 학계의 권위자들을 싸잡아 겁쟁이라든지 고질병을 앓는 환자라고 욕을 퍼붓는 쇼를 기대했으리라. 실제로 류샤오보는 번뜩이는 지성보다 체면을 차리지 않는 표현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를 스타로 만들어주었던 신랄한 위악이 나중에는 불행의 빌미가 될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유명인이 되고도 빈정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홍콩의 발전상을 본 그는 중국이 300년은 식민지가 되어야 뭔가 나아질 거라고 했다. 미국에 방문한 후에는, 자신이 똑똑하게 보인 까닭은 중국이라는 어리석고 모자란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모든 글 가운데 그의 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혔으며 또한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정시킨 글줄이 이때 쏟아져 나왔다.

시대는 여물기 마련이다. 저만 잘난 사내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외국생활을 급히 접고 돌아온 사내가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에 앉았다. 정부와 시위대 모두를 힐난하면서, 그는 순진하게도 자신의 단식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닷새 뒤 2,000명의 피로 얼룩진 북경 시내 한복판에서 갑자기 실종됐다. 앞으로 계속될 네 번에 걸친 투옥의 시작이었다.

천안문 이후 류샤오보는 온건파 민주주의자가 된다. 전에는 관심도 두지 않던 자유와 인권을 말하기 시작했다. 노동착취를 폭로하고 문화검열에 반대했다. 흑백논리의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금메달에만 목을 매는 스포츠 정책을 꼬집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알려진 바와 달리 그는 반체제인사가 아니었다. 더 급진적인 비판자들은 중국에도 많다. 그의 마지막 체포는 일당(一黨) 집권의 종식을 요구했기 때문이지만 전에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있었다.

유독 그에게 탄압이 집중된 이유는 과거의 명성이 중국사회의 증오 또는 무관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소싯적 자신이 기성세대를 그리 대했듯이, 그 또한 이제 기성세대로서 편리한 모욕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그는 자신에겐 적이 없으며 원한도 없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젊은 날을 아는 이 가운데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체제전복 혐의를 받았지만 진짜 죄목을 말하자면 괘씸죄다. 공안은 편 들어주는 이 없는 그를 손쉽게 잡아 가두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랬기 때문에 그는 중국을 대표하는 민주화 운동가가 됐다.

나는 류샤오보를 인권의 상징으로 칭송하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5년 전 한 공무원이 간첩 혐의로 끌려갔다. 그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정보기관이 그의 여동생을 고문했다. 3년 전에는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고 한 재미동포가 송사를 겪었다. 그녀는 기소유예를 받고도 강제 추방됐다. 올해엔 온라인 도서관을 운영하던 사람이 잡혀갔다. 그는 죄 없이 반년간 옥살이를 했다. 내란을 음모하거나 모의하지 않고도 내란선동을 하였다는 죄로 감옥 안에 있는 사람도 있다. 그를 잡아넣기 위해 검찰은 증거를 조작했다. 우리가 그들을 인권의 상징으로 소환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손이상 문화운동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