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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가끔은 워킹맘이 부럽지만

입력
2017.02.0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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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가계부를 정리할 때면 한숨이 나온다. 아파트 대출금에 각종 공과금, 보험금 등을 제하면 얼마 남지 않는 생활비 때문이다. 씀씀이가 큰 편은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생활비가 이래저래 많이 들어 저금은커녕 적자가 나기 일쑤다. 이럴 때면 다른 워킹맘처럼 다시 일하고 싶은 생각, 아니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부러운 건 생활비뿐만이 아니다. 대충 옷을 걸치고 아이를 등원시키다 우연히 주변 워킹맘들과 마주칠 때면 내가 한없이 작아진다. 화장을 하고 옷을 갖춰 입고 어디론가 바삐 향하는 모습에서 괜한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발걸음을 서두르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바쁘고 정신 없었을 워킹맘의 아침에 대한 생각은 싹 사라지고, 여전히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그녀들의 위치가 부러울 따름이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당시 나는 방송국 편성팀에서 근무했었다. 편성 전략을 짜고 편성표를 그리거나 채널 디자인을 관리하며 예고나 스팟 등을 만드는 게 나의 주 업무였다. 물론 이러한 업무에 백 퍼센트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큰 불만 없이 다니던 중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자 육아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양쪽 부모님 모두 아이를 봐줄 상황은 못 되므로 나는 아이를 낳으면 육아 도우미의 힘을 빌려야 했다. 다시 말해 이제 곧 워킹맘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내가 받는 월급에서 육아에 드는 비용을 제하고 사회생활 하면서 쓰는 돈 등을 빼고 보니 남는 돈은 많지 않았다. 물론 그래도 포기하기는 아까운 수입이었지만 아이를 직접 키우는 일이 가져다 주는 장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결론짓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예전부터 품어왔던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본격적으로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름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선택한 전업맘으로서의 길은 녹록지 않았다. 우선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겠다는 포부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었다. 육아와 살림만으로도 하루는 벅찼다. 그나마 아이가 기관에 다니면서부터는 짬이 생겨서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었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을 만큼 하루는 여전히 짧다. 게다가 전업주부다 보니 양쪽 집의 제사며 김장이며 집안 대소사에도 빠질 수가 없었다. 물론 경제적 고민도 커졌다. 생활비도 빠듯한 형편에 공부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차라리 직장에 계속 다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업맘이냐 워킹맘이냐를 선택하는 갈림길에 선다면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이유는 딱 하나다. 아이 곁에 조금 더 오래 있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힘들기도 하지만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 이 시간은 분명 축복이니 말이다. 내가 포기하고 뒤돌아선 것들도 분명 가치 없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행복 역시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다. 특히 아이가 아플 때 다른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가 옆에 있어 줄 수 있을 때면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어서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그녀들의 삶 속에는 나름의 어려움과 행복함이 공존하리라 생각한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백 퍼센트 만족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리라. 그래서 가끔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기도 하고 서로가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자신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일인 것 같다. 자꾸만 내가 가진 행복을 들춰보는 일, 하루하루가 고된 세상 모든 엄마에게 꼭 필요한 습관이 아닐까 싶다. 열악한 사회 제도 안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고군분투하는 워킹맘을 응원한다. 동시에 한 가정의 살림을 전담하며 직장생활만큼 어려운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한 육아를 해내는 전업맘을 응원한다. 우리는 모두 그 어려운 엄마라는 일을 해내고 있다.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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