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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GM 협상과 경제주권

입력
2018.03.08 14: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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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수법을 동원해 막대한 이윤을 빼내간 GM에 분노하는 사이, 이상한 협상 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미국 자본과 한국 정부 간 협상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본래 협상이란 당사자 간 힘의 균형을 전제하는 관계다. 완전한 힘의 대칭을 협상 현실에서 찾을 수야 없지만, 상호의존성을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어야 비로소 형성되는 게 협상관계다. 협상전략은 그 다음 문제다. 힘의 비대칭이 심할수록 전략이 개입할 여지는 미미해 진다. 권력의 정도가 협상의 성과를 규정하는 만큼. 협상은 협소한 정치적 공간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도 지배-종속적이다. 노사협상은 더욱 그러하다. 협상에 거는 게 서로 다르다. 노동은 생계를 내놓아야 하지만, 자본은 이윤 기회 정도를 걸 뿐이다. 협상이 결렬되면 자본은 많은 이윤 기회 중 하나를 잃을 뿐이지만 노동은 삶 자체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만다. 상대가 해외자본이라면 노동의 종속성은 더욱 심화된다. 이동성이 높은 데다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GM과의 협상은 협상관계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을 만큼 힘의 비대칭이 극단적이다. GM 본사는 잃을 게 없는 판을 치밀하게 짜 놓았다. 2002년 대우차 헐값 인수 이후 이미 막대한 이익을 챙기기도 했거니와 2014년 이후 본격화된 전략 변화로 인해 협상 대상인 한국GM의 전략적 위상도 크게 낮아졌다. 이전까지 GM은 플랫폼 개발과 생산능력에 따라 지역별 경영 거점 역할을 자회사에 분배했다. 이를 테면 유럽 대륙은 독일의 오펠 그룹을, 아시아는 한국GM을 개발과 생산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한국GM이 2013년까지 연간 최대 200만대를 생산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지생산ㆍ현지판매 중심으로 자회사 운영 전략을 수정하면서 영업실적이 낮은 자회사를 모두 매각했다. 오펠 그룹을 매각했고 호주, 인도, 남아공에서도 철수했다. 아시아 지역 역시 현지 판매를 통한 단기 이익 구현이 가능한 중국으로 거점을 대체했다. 그만큼 GM의 전략 지도에서 한국GM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졌다. 돈 되는 곳만 골라 투자하겠다는 데 토 달기 힘든 점도 없지 않으나 그 과정이 치졸하다. 본사는 한국GM을 부당거래를 통해 의도적으로 부실화했다. 이전가격 문제가 대표적이다. 본사가 자회사와의 부품 거래에 적용하는 이전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해 적자 기업으로 만들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북미 GM 공장의 매출원가를 적용할 경우 한국GM은 적자가 아니라 외려 1조1,430억 원의 흑자가 난다. 알루미늄, 구리, 플라스틱 등 주원재료 가격이 수 년간 하락세였던 점을 감안하면 본사가 챙긴 액수는 더 커진다. 그럼에도 낮은 생산성 운운하며 3조원 규모의 정부 지원을 요구하니 기막힐 노릇이다.

이제 철수해도 잃을 게 없는 GM이 협상이란 이름의 판을 깔았다. 협박에 다름 아님에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참담하다. 치밀히 대응하되 이익 관점이 아닌 경제주권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라일리 전 GM대우 사장은 신차종 배정과 함께 독점적 생산권을 확보해야 한다(경향신문 3월 7일자)고 조언하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이익이다. 현지생산ㆍ현지판매 전략을 고수한다면 독점권을 내줄리 없고 설사 받는다 해도 수출 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유럽에서의 GM 신인도는 해마다 떨어지는 추세이고 아시아 시장은 이미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이다. 철저한 경영 실사는 그 자체가 중요한 협상 목표다. 의도적 부실화의 실상을 고발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며 불법에 대해서는 엄중히 책임을 물을 일이다. 완전 철수에 대비한 대안 마련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비정규직을 포함하는 노동자 등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내부의 신뢰를 다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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