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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존과 상생을 위한 기본자세

입력
2017.11.03 14:1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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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배우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필자는 단연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중요한 게 아니라 남도 중요하다는 사실. 하나의 육신에 갇혀 사는 이상 누구나 내 몸과 내 삶이 가장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가 크면서 남까지 배려하고 심지어는 남을 더 우선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를 어른이라 부른다. 외동딸이나 외동아들만 키우는 가정이 대부분인 요즘 세상에 형제관계가 더욱 귀하고 중요해지는 이유도 같은 이치이다. 한 집에서 자원과 관심을 독차지하지 않고 나누며 사는 것에 일찍부터 익숙한 아이는 나를 넘어선 시선을 더 쉽게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생, 공존, 다양성 등이 요즘 사회의 키워드로 널리 회자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한창 자라는 그 아이로 다시 돌아가 보자. 혼자든 형제자매가 있든 모든 아이들의 생활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생물들에 둘러싸여 지낸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것이 그림이든 장난감이든 만화영화든 간에 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동식물의 풍부한 존재감 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동식물이 등장하는 그림책이나 옷, 가방 등을 전혀 구비하고 있지 않은 가정은 없다. 즉, 모든 부모는 아이의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은 바로 이러한 생물과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암암리에 인정한 셈이다. 뭐, 애들이 워낙 좋아하니까! 그렇다. 원래 아이는, 아니 인간은 공존과 상생과 다양성 속에서 살고자 하는 존재이다.

또 다시 그 아이로 돌아가자. 밖에 나가 놀던 아이가 집에 돌아왔다. 팔꿈치에는 모기 물린 자국, 손에는 가시에 찔린 상처, 엉덩이는 흙과 낙엽으로 엉망이다. 나 말고 다른 이들이 사는 바깥세상에서 놀다 온 것이다. 그런데 이를 본 부모의 반응은? 아이를 나무라는 것까지야 각 가정의 소관이니 논외이다. 하지만 이어서 벌어지는 아주 이상한 행동이 있다. 전화기를 들거나 인터넷에 들어가 구청 또는 시청에 민원을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용인즉슨 모기와 가시와 흙과 낙엽을 깡그리 없애달라는 것. 말하자면 바깥세상의 자연을 전부 제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것도 시간과 품을 들여, 당당히, 수 차례에 걸쳐서 말이다.

이런 민원에 떠밀려, 또는 당국 자체의 의지로 인해 매해 우리 주변의 자연에 엄청난 해가 가해지고 있다. 풀 베기, 가로수 전정, 지면 포장, 낙엽 제거, 방역 등. 잠깐, 다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들 아닌가? 어느 정도까지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러한 조치는 마치 불한당들을 박멸시키겠다는 의지를 번뜩이며 도심 자연 자체를 위협한다. 그 결과는 때로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가령 지난 10월 초 안양천 신정잠수교 인근 자연생태학습장 내 인공습지가 하루아침에 처참한 죽음의 현장으로 발견되었다. 이 작은 웅덩이는 여러 어류와 개구리는 물론,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맹꽁이가 서식하던 곳이었다. 학생들로 구성된 자발적인 모임이 이 소중한 자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환경단체의 도움을 받아 양서류 보호 안내판까지 세워두었던 곳이다. 한 때 양서류의 산란활동으로 작은 알들이 수생식물과 혼재하던 신비로운 연못이, 마치 생화학전을 방불케 하듯 화학약품으로 희뿌옇게 변해버린 물에 부식된 개구리와 물고기 사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 수 없으나 탐문조사에 의하면 가을 모기 또는 조류독감 방제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기와 바이러스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워도 아무 상관없다는 것인가?

자연을 그저 벌레와 병균이 들끓는 소굴로 농약 살포의 대상쯤으로 치부하는 자세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공존과 상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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