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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이에서 온 편지] 삶의 동기를 찾는 여행 “책과 함께 하룻밤 잘 묵고 갑니다”

입력
2017.03.1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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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가득 책을 품은 서재

손님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세 사람이 읽은 세 권의 책

1만3,000여권의 장서를 모티프원의 서재는 이안수 촌장 부부가 손님들과 함께 책을 통해 생각을 나누고, 인생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모티프원 제공
1만3,000여권의 장서를 모티프원의 서재는 이안수 촌장 부부가 손님들과 함께 책을 통해 생각을 나누고, 인생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모티프원 제공

사람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마음 비빌 타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경기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 자리잡은 모티프원(motif#1)은 그 허허로운 마음의 접점을 자처한 곳으로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최고의 이유, 즉 ‘삶의 제1동기’를 뜻합니다. 이곳에는 사방 가득 많은 책들을 품고 있는 큰 서재가 있는데 이 서재의 이름은 '영', 바로 숫자 제로(0)입니다. 그동안 내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비우고 책 속의 잔잔한, 또는 격한 목소리들을 다시 새롭게 받아들이란 뜻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 중에 인상적이었던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파브로 곤충기’를 인생의 책으로 품은 한 여인에 관한 것입니다. 그녀가 ‘파브르 곤충기’에 빠진 것은 26년 전, 교사라는 직분이 소신과 열정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큰 좌절에 빠졌던 30대 초반입니다. 그녀는 불합리한 교육 현장을 무조건 인내하거나 그 안에서 타협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무너진 자존감과 무기력을 위로 받고 싶어 한때 스승이었던 이오덕 선생을 찾아갔습니다.

그녀의 깊은 한숨에 선생은 조용히 책 한 권을 건넸습니다. 그 책이 바로 ‘파브르 곤충기’였습니다. 책 한 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에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그녀는 얼마 후 학교의 쓰레기 소각장에서 버려진 ‘파브르 곤충기’ 1권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곤충기 한 권이 놀랍게도 절망하고 고뇌하던 문제들에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습니다.

그때부터 헌책방을 돌면서 ‘파브르 곤충기’를 수집했고, 그 책들은 번역자에 따라, 엮은이에 따라, 출판사에 따라 모두 느낌이 달랐습니다. 국내 번역서가 요약본이라는 것에 실망하여 외국으로 나가는 지인에게 완역본을 부탁했고, 이오덕 선생께서 일본어로 번역된 완역본을 소장한 것에 경도되어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오직 ‘파브르 곤충기’를 읽기 위한 늦깎이 공부였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150종이 넘는 판본들을 수집했고 아이들에게도 수시로 ‘파브르 곤충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제 교직에서 은퇴한 지 오래되었지만 외롭고 힘들어 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오덕 선생처럼 말한다고 합니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어보세요!"라고 말입니다.

파브르 곤충기 1

장 앙리 파브르 지음ㆍ김진일 옮김

이원규 사진ㆍ정수일 그림

현암사 발행ㆍ384쪽ㆍ 1만9,500원

보다: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발행ㆍ212쪽ㆍ1만2,000원

한비자: 군주론과 제왕학의 영원한 고전 양장

한비자 지음ㆍ김원중 옮김

휴머니스트 발행ㆍ960쪽ㆍ3만6,000원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34살의 한 청년입니다. 그가 모티프원을 찾았던 날, 우리는 밤이 새도록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청년기의 현실적 고민과 변화에 대한 욕구, 망설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그는 헤이리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서재에서 책 한 권을 빼어 들었는데 김영하 작가의 ‘보다’였습니다.

"김영하의 간결하면서도 뚝뚝 던지는 글을 좋아하고, 그의 책을 여럿 읽었습니다. ‘집단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위험하다. 집단적 사고는 공포에도, 거짓에도 쉽게 사로잡히게 된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갖는 것, 그 내면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잘 느끼는 사람은 남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는다. 내가 느꼈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다.’ 그가 쓴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저는 제 인생의 방향을 다시 잡게 되었습니다. 여행도, 책도, 하다못해 물건 하나를 살 때도, 남의 의견을 더 신경 쓰고 눈치 보는 삶, 그런 시간을 반성했고, 내 삶이 공허한 이유를 깨닫게 된 겁니다."

그 청년이 헤이리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것입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으면서 다시 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꼭 다시 오겠습니다!"

어느 날 불쑥 한 남자가 찾아 왔습니다. 그는 방에서 하룻밤을 두문불출했습니다. 2297년 전의 또 다른 남자와 함께 밤을 지새운 것입니다. 바로 한비자입니다. 법가학파를 대표하는 고대의 사상가이자 천하통일을 꿈꾸었고 결국 그것을 이룬 진왕 정(훗날의 진시황)이 그토록 만나기를 갈망했던 남자. 그는 밤새 한비자를 만나고 다음날 총총걸음으로 모티프원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두 남자의 하룻밤을 이렇게 남겨 놓았습니다.

"이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리얼리스트 한비자와 함께 하룻밤 잘 묵고 갑니다. -성장하는 사람."

북스테이를 방문한 사람들은 외딴섬에 고립된 유배자가 되기도 하고, 미지의 행성을 향하는 우주탐사선의 우주비행사가 되기도 합니다. 책은 때론 허황된 욕망과 허세만 쫓던 시간들을 반성하게 하고 고개 숙여 발 밑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남의 웃음뿐 아니라 눈물도 보고, 그 눈물의 가치도 헤아리게 됩니다. 그렇게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과 함께 맞장구를 치며 공감하고, 때론 반론하는 것이 저의 몫입니다. 이곳에서 함께하는 독서가 곧 인생의 소중한 체험이자 체득이 되는 이유입니다.

헤이리예술마을 이안수 촌장ㆍ북스테이 네크워크(bookstay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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