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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항공사 노조의 편지… 장관의 선택은?

입력
2014.10.0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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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두 항공사 노조가 사흘 새 서승환(사진) 국토교통부 장관 앞으로 경쟁적으로 공개서한을 보냈습니다. 시작은 아시아나 노조였는데요. 국토부가 다음 달 아시아나에 인천∼샌프란시스코 노선에 대해 최대 90일까지 운항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자 전국운수산업노조 아시아나지부, 열린조종사노조, 객실승무원 노조 등 아시아나 4개 노조가 뭉쳐 처분 수위를 낮춰달라는 편지(청원서)를 국토부 장관 앞으로 보냈습니다. 이들 노조는 편지에서 사고에 대해서 사과한다면서도 “운항중단 처분이 내려지면 수요 대부분을 외국항공사가 흡수해 고객 불편과 함께 막대한 국익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는데요. 그러면서 아시아나 승무원의 헌신적 구조 노력으로 희생이 최소화된 점,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항공기 제작사(보잉)의 공동 책임을 사실상 인정한 부분, 항공 사고를 낸 자국 항공사에 운항정지 처분을 내린 경우가 없는 외국 사례 등을 함께 고려해 “운항정지가 아닌 과징금 부과 처분을 내려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한항공 노동조합이 지난달 30일 “29일 국토부 장관 앞으로 탄원서를 보냈다”고 밝혔는데요. 노조 측이 공개한 탄원서에는 “행정처분은 마땅히 운항정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조종사 과실로 적지 않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낸 데 대해 과징금 납부로 면죄부를 받는다면 누가 항공안전을 위해 막대한 투자와 훈련을 하고 심각하게 안전대책을 강구 하겠느냐”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내용들은 아시아나 노조들이 냈던 청원서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이어 “NTSB가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 훈련 부족, 조종실 내 의사소통 문제 등으로 발표했지만, 아직 아시아나에 대한 정부의 행정 처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1990년대 말 대한항공이 사고를 냈을 당시 바로 운항정지, 노선면허취소 처분 등 가혹한 처분을 내렸던 것과는 상반된 조치”라고 반발했습니다. 운항정지에 따른 승객 불편 우려에 대해선 “샌프란시스코 노선은 한미 노선 중 운항사 수가 가장 많은 공급과잉 노선이어서 정지 처분이 내려져도 승객 불편 문제는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노조는 “아시아나를 무조건 처벌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 따라 일관성 있는 행정을 펴고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라며 국토부 측을 압박했는데요.

두 회사 노조 측에 장관 앞으로 서한을 보낸 속내를 물어봤습니다. 이종호 대한항공 노조위원장은 “잘못한 것에 대한 분명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썼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1990년대 말 상해 화물기 사고 등 대한항공 사고에 대해서는 당시 정부가 사고 원인 조사 결과도 안 나온 상태에서 조종사 과실이라고 발표를 하고 곧바로 운항 정치 처분을 내렸었는데 왜 지금은 시간을 끄는 것처럼 행정 처분을 내리지 않은지 모르겠다”며 ‘형평성’의 문제를 따졌습니다. 이 위원장 개인적으로 상해 화물기 사고 당시 실무자였던 터라 당시 정부의 ‘매몰찬’ 대응에 누구보다도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위원장은 지난 6월 중국 노선 운수권 배분 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고를 낸 아시아나항공이 신규 노선 배분에서 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신규 노선 1개와 기존 노선 8곳(주22회)을 추가로 배정 받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되려 대한항공이 차별대우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억울함을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대한항공은 회사 차원에서 깊은 유감을 담은 공식 성명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항변 뒤에는 경제적 이유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이 운항 정지 처분을 받을 경우 대한항공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인천∼샌프란시스코 노선은 현재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유나이티드항공, 싱가포르항공 등 4개 항공사가 취항 중입니다. 월 평균 탑승객은 아시아나가 1만5,000명, 대한항공은 1만3,000명, 유나이티드항공이 1만9,000명 수준인데요. 아시아나는 이 노선에서 3개월 운항정지 처분이 내려지면 자사에 약 32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월 8,000석 정도 좌석이 부족해져 승객들이 불편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샌프란시스코 노선은 한미 노선 중 운항사 수가 가장 많은 공급과잉 노선이어서 정지 처분이 내려져도 승객 불편 문제는 없다”고 말합니다.

사측도 이 위원장이 서한을 보낸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위원장은 탄원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담당 기자들에게 메일을 통해 알렸는데요. 메일 리스트를 건네 준 것이 회사 홍보실이었습니다. 회사 측은 “탄원서와 직접 관련 없다”고 하지만 널리 알려지도록 힘을 보탠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아시아나항공의 노조의 청원서도 사측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민성식 위원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회사 측에서 청원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면서 도움을 요청했다”며 “평소 회사에 대해 비판자 역할을 하는 게 노조지만 지금은 회사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다 같이 동참하자는 뜻에서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탑승률 85%, 연 매출 1,200억원에 달하는 아시아나의 ‘알짜 노선’이 끊기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노조까지 나선 것으로 볼 수 있겠죠. “한 번 다른 항공사를 이용하게 되면 관련 마일리지 등으로 다시 고객들이 돌아오기가 쉽지 않고 특히 외국항공사로 승객들이 옮겨갈 수도 있다”는 민 위원장의 설명에도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민 위원장은 “다른 회사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왜 이래라저래라 하는 지 모르겠다”며 대한항공 노조 측의 탄원서를 답답해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항공사 노조들의 청원서 경쟁에는 두 회사가 직간접적으로 개입을 한 셈이죠.

양사의 신경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대한항공은 좀처럼 공개하지 않던 객실승무원들의 안전 훈련 모습을 언론에 공개, 아시아나항공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업계에서는 “경쟁사의 흠을 자기 홍보에 교묘하게 활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제 공은 서승환 국토부 장관에게 넘어갔습니다. 어떤 편지에 마음을 빼앗길 지 지켜볼 일입니다만. 어찌됐든 글쓴이의 의도가 순수해 보이지 않으니 씁쓸할 뿐입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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