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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방송가 '을'의 눈물

입력
2017.05.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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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케이블 채널의 예능프로그램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촬영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 케이블 채널의 예능프로그램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촬영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에너지 음료 없이는 하루를 못 버텨요." 카페인 함량이 높은 일명 에너지 음료는 방송가 청춘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졸지 않게 해주는 '악마의 특효약'이기 때문이다. 커피보다 카페인 농도가 더 짙은 경우가 많은 에너지 음료에 20~30대 방송 스태프들은 중독돼 가고 있다.

경력 1년 남짓한 ‘막내 작가’ 대부분은 "녹화 전날은 새벽에 퇴근하기 일쑤고, 당일에는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함으로 에너지 음료는 선택이 아닌 필수란다. 그거라도 마시지 않으면 녹화 날 꾸벅꾸벅 졸게 되고 제작진의 불호령이라도 떨어지면 “잘릴까”하는 걱정에 심적 스트레스까지 감당해야 한다. 어디 막내 작가들뿐이랴. 방송 촬영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중소 외주제작사에 몸담고 있는 한 조연출도 "'핫XX'가 가장 잘 듣는 에너지 음료"라고 추천할 정도다. 그렇다고 시간외수당이나 휴일수당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대형 제작사가 아닌 이상 "거의 자원봉사 수준"으로 노동을 제공한다.

지난해 CJ E&M 소속 드라마 PD의 자살은 대한민국 방송가의 반성 없는 실태에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시간과 열정을 탈탈 털어 줄 준비가 된 젊은이만이 방송계에 입성할 수 있는 시스템은 변치 않았다. 저임금이야 말할 것도 없다. "너희들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인식이 방송계에 팽배해 방송 스태프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직종 중 하나가 됐다.

방송 스태프에게는 '3무(無)'가 있다. 잠, 돈, 휴식이다.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노동의 조건이 유독 방송가에선 통하지 않는다. 그저 방송가는 이들의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들 역시 그런 구조 안에서 무너져간다. '을'이기에 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 방송가 노동 현실에 대한 보도(본보 4월25일자 1면)를 한 뒤 몇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 중 한 중견작가의 이메일은 충격적이었다. 종합편성채널(종편)의 교양프로그램을 이끄는 메인 작가인데 열 살 가까이 어린 담당 PD에게 심한 욕설과 폭언을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작가는 방송작가협회에 경위서까지 제출하며 해당 방송사와 PD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PD가 사직서를 내고 퇴사해 "사건 당사자가 없다"는 이유로 작가협회조차 손을 쓰지 못했다. 갑을이라는 뚜렷한 위계가 20년 경력의 베테랑 작가에게도 굴욕을 안긴 것이다. 이는 표준근로계약서의 필요성을 다시 절감케 하고 있다.

이달 출범 예정인 방송작가노조는 작가가 외주제작사나 방송사와 계약을 맺을 때 필요한 표준근로계약서를 만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는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부터 문화예술계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방송분야별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권장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행되는지는 물음표다.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작가들을 위한 표준계약서도 5,6월 경 도입하려고 했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 불투명하게 됐다. 과연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들의 노동 현장이 조금은 나아질까.

막내 작가들은 명절이나 선거 등 국가의 큰 행사가 달갑지 않다고 한다. 주당 30만원 정도를 받는데 한 주라도 프로그램이 결방되면 그마저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TV토론회 등 특별방송이 많아진 요즘, 새 정부의 어깨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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