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등록 : 2018.06.26 19:00

[김진석의 우충좌돌] 전쟁 속 평화

등록 : 2018.06.26 19:00

비핵화가 이끌 평화, 잠정적이고 불안정

북핵 인정, 미중 핵무기 보유 불변 때문

평화는 통제 대상 위험, 영구 평화 없어

비핵화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는 정책은 현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옳다. 그렇다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가 목표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문제다.핵폭탄을 미국으로 옮겨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너무 몰아세우는 인상을 줬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보유한 핵폭탄이 모두 폐기된다 해도 완전한 비핵화는 아니다. 핵무장 능력은 여전히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 로버트 갈루치는 “북한의 잠재적인 핵무기 제조 능력을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CVID를 ‘정치적 허튼소리”라고 했다.

그럼 비핵화 협상으로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하는 일은 현재 최고로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하거나 되돌릴 수 없는 평화가 오지는 않는다. 우리가 누릴 평화는 잠정적이고 불안정하다. 그 평화는 진짜 착한 평화도 아니다. 민주적이지 않은 체제를 보장해주고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대가로 얻어지는 보상일 뿐이다. 물론 그 보상이 허튼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조건이 붙은 평화이다. 우선 북한이 핵무기를 가짐으로써 더 강한 협상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또 지구적 차원에서 강국들만 핵폭탄을 보유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핵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은 앞으로 군사와 산업 차원에서 점점 ‘전쟁이면서 전쟁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전쟁 비슷한’ 대결을 할 것이다. 그 와중에서 평화는, 하루살이는 아니더라도, ‘순간살이’일 터이다.

구글이 미 국방부와 전쟁기계를 개발하는 사업을 시작했다가 직원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 사업을 포기했다. 구글은 착한 회사?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구글은 군사적 목적의 AI를 개발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다른 사업을 할 기회를 가진 회사라고 직원들은 믿었을 것이고, 그건 맞다. 최고 명성을 누리는 회사까지 직접 군사적 목적의 인공지능 개발에 나설 필요는 없다. 지난 4월에는 카이스트가 한화시스템과 AI 무기개발을 위한 ‘국방 AI 융합연구센터’를 설립했다며, 해외 학자들이 카이스트와의 연구협력을 보이콧했다. 카이스트는 “살상용 로봇 개발은 사실무근이며, 학문기관으로서 인권을 중시하고 매우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고, 갈등은 일단 조정되었다.

그러나 AI 기술이 무기로 사용되지 않게 막을 근본적인 방법은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것을 평화를 위해서만 사용하자는 말은 도덕적ㆍ정치적으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기는 힘들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기 쉽다. 다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기업과 연구기관이 ‘더러운’ AI에 발을 담그는 일은 ‘더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품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기업들과 방산업체들은 국방 차원에서 얼마든지 협력할 것이다. 이것까지 막는 시스템은 없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위험 관리 차원에서 통제되어야 할 일종의 위험(risk)이다. 평화를 원하지 않아서, 이런 말을? 아니다. 나도 평화를 원한다. 평화가 있는 풍경들을 그림으로 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구 평화’는 헛소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 세대는 전쟁 이후에 도래한 정말 드문 평화로운 시대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전쟁을 통해 배운 여러 지혜가 거기에 기여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푸른 하늘이 보이고 한동안 전장에 조용함이 깃들 때, 그때, ‘전쟁과 평화’는 전쟁 ‘속’ 평화였다. 아마 앞으로 ‘전쟁이면서도 전쟁 아닌 척하는, 그러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속에서 겨우 평화가 있을 듯하다. 이런, 영구 평화보다 그것이 더 귀중함을 알아야 한다니! 지금은 종전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시간. 까다로운 평화가 새털처럼 붕 떠 있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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