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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큰 깡패, 작은 깡패

입력
2018.07.1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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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학교에 깡패들이 많았다. 덩치 큰 깡패들은 이따금 패를 지어 싸우지만 평소에는대체로 전략적 협조를 할 때가 많았다. 당시 서울 영등포 우범지대 조직과 연결돼 있다던 나이가 좀 든 깡패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반면 잔챙이 깡패들이 설쳐댔다. 그러자 큰 깡패들이 잔챙이 소탕작전을 벌였다. 큰 깡패들이 잠잠한 사이 잔챙이들이 학생들을 수시로 괴롭혔기 때문이다. 큰 깡패들이 잔챙이들을 학교 담벼락으로 불러모아 본때를 보인 뒤부터 학교가 조용해졌다. 미국과 북한의 핵협상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세 번이나 방문했지만 별달리 얻은 것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지도 못한 데다 그가 평양을 떠난 지 5시간 만에 외무성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미국의 강도적 심리가 반영된 강도적 요구”라 했다. 영문판에서는 ‘깡패 같은(gangster-like)’이라고 썼는데 ‘강도(robber 혹은 mugger)’라는 표현보다 강해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도 “우리 요구가 깡패면 세계가 깡패”라고 응수했다. 국가간 협상에서 깡패나 강도 같은 격한 표현이 나오는 것은 흔치 않다.

▦ 세계적 석학 노암 촘스키는 ‘악당국가(rogue state)’라는 말을 즐겨 썼다. 그의 한국어 번역판 저서 제목은 ‘불량국가’다. 악당국가는 미국도 지칭하지만, 미국의 적으로 등장하는 이라크 리비아 쿠바 북한을 이 범주에 포함시켰다. 큰 악당이냐 작은 악당이냐의 차이다. 미국전략사령부의 1995년 비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구 소련 와해 이후 미국은 이들을 불량국가로 지목해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미국의 이익이 치명적으로 공격당할 경우 반드시 보복하는 국가로 인식시키기 위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도 시사한다.

▦ 더욱이 미국이 국제법이나 조약상의 의무 준수 같은 어리석음을 고집하는 것, 너무 이성적이고 냉철한 머리를 가진 나라처럼 행동하는 것은 자해행위라고 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이런 전략을 이어받은 것이 틀림없다. 촘스키가 지목한 작은 악당국가 중 이라크 리비아는 미국 손에 와해됐다.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혁명 후 세대’로 넘어갔다. 남은 것은 북한뿐이다. 하지만 미국에 ‘미치광이 전략’이 있다면 북한은 ‘벼랑끝 전술’이 있다. 북한이 미국에 밀리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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