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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유력 주자들 줄잇는 불출마... 엘시시 압력에 굴복한 듯

입력
2018.02.01 14: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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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유력 주자들 줄잇는 불출마… 엘시시 압력에 굴복한 듯

엘시시 연임 도전 선언 이후

후보들 석연찮은 사퇴 계속

'들러리' 무명 정치인만 후보 등록

이집트 화폐 가지 두달 새 절반 뚝

청년 셋 중 한 명은 실업자 신세

"대통령 누구든 경제난 탈출 바라"

/그림1 지난해 1월 이집트 카이로 시민들이 시민혁명 6주년인 25일 반정부 시위 중심지였던 타흐리르 광장에서 기념 집회를 여는 동안 한 여성이 민주화를 좌절시킨 군부 세력의 핵심인 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 사진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카이로=신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1년 1월 민주화 시위를 통해 무바라크 30년 통치를 무너뜨리고 ‘아랍의 봄’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이집트. 이집트 국민들은 이듬해 선거를 통해 이슬람 세력 ‘무슬림 형제단’출신 모하메드 무르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러나 1952년 왕정 붕괴 이후의 첫 문민 대통령의 치세는 너무 짧았다. 1년 만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무르시를 축출하고, 반(反) 쿠데타 시위를 유혈 진압하면서 민주화 열망이 좌절된 것. 당시 국방장관으로 군부 쿠데타를 주도, 이듬해 대선에서 당선된 압델 파타 엘시시(64) 대통령이 올해 집권 4년의 공과를 평가 받는다. 3월 26~28일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진행되고,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4월 24~26일 결선 투표가 치러진다.

엘시시 반대자에는 ‘무관용’… 유력 후보들 석연찮은 불출마

엘시시 대통령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나는 밤낮으로 일밖에 모른다. 국민이 지지하는 한 모든 도전에 맞설 수 있다”며 공식적으로 연임 도전을 선언했다. 그의 출마 선언과 동시에 대선 레이스는 사실상 그의 연임을 추인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군부와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엘시시 대통령의 최대 도전 세력은 무슬림 형제단이지만, 2013년 쿠데타 이후 활동이 금지됐다. 엘시시 집권 이후 무슬림 형제단 세력을 중심으로 반정부 인사가 6만명이나 잡혀 들어갔는데도 이번 선거를 전후해서도 ‘무관용 원칙(zero-tolerence)’(알자지라)에 따라 탄압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현지 평가다.

일찍부터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유력 주자들이 엘시시 대통령 출마선언 이후 줄줄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게 이를 방증한다. 2012년 대선에서 무르시 전 대통령에게 석패했던 아흐메드 샤피크(76)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꼽히던 인물로, 군 장성 출신이지만 평소‘군부 권력을 점진적으로 민간에게 이양해야 한다’라는 소신을 피력, 주목을 받았다. 지난 해 11월말 망명지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지난달 7일 갑자기 불출마로 입장을 바꿨다. 뉴욕타임스는 샤피크 전 총리 측 변호사를 인용, “이집트 정부가 출마를 포기하지 않으면 부패 혐의를 조사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보도했다. 엘시시 측이 불출마 압력을 넣었다는 얘기다.

1981년 암살된 안와르 사다트 전 대통령의 조카로 진보 성향의 안와르 에스메트 사다트 전 의원도 마찬가지. 지난 해 외국 외교관들에게 NGO 관련 법안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그는 지난달 15일“엘시시에 도전하려 하자, 내 지지자들의 안위에 위협을 느꼈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출마를 공표했던 사미 아난(69) 전 합참의장도 사전허가 없이 출마를 발표, 군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23일 전격 체포됐고 현재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집권세력은 아난 측근들이 엘시시 정권의 부패 문제를 제기한 점을 눈엣가시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의료보험 확대ㆍ최저임금 인상 등을 공약해 ‘이집트의 버니 샌더스’로도 불렸던 인권 변호사 칼레드 알리(46)는 지난달 24일 “공정한 선거를 기대할 수 없다”며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페이스북 접속을 차단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던 모르타다 만수르(65)의원도 지난달 26일 출마의사를 거뒀다.

3주 사이에 5명의 후보가 석연찮은 이유로 사퇴한 가운데, 지난달 29일 후보 등록 몇 시간을 앞두고 무사 무스타파(66) 알가드당 대표가 대선 후보 등록서류를 선관위에 제출했다. 그는 의석조차 없는 정당의 무명 정치인. 후보 등록 시점까지 자신의 페이스북에 ‘엘시시의 연임을 지지한다’는 글을 게시했던 인물이다. 정황상 들러리 후보임이 명백하다.

야권은 대선 불참 운동을 시작했다. 알자지라는 “이집트의 인권탄압을 문제 삼았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이란 견제를 위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엘시시를 밀어주면서, 엘시시가 마음 놓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군부 내에서 엘시시 이외 강성 인물을 내세우려는 움직임도 있어 엘시시 대통령이 끈을 바짝 죄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문제는 경제야’… 투표율 주목해야

엘시시 대통령이 연임을 위해 사실상 들러리 후보를 세운 이번 대선에서 눈 여겨 봐야 할 포인트는 투표율과 엘시시 대통령의 지지율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014년 선거 투표율은 47.5%, 엘시시 지지율은 97%였다.

관건은 경제인데 상황은 여의치 않다. 엘시시 집권 이후에도 경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서민들의 생활고는 가중되고 있다. 구제금융을 제공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 긴축 요구에 따라 이집트 정부가 에너지 보조금을 삭감하면서 지난해 8월 전기요금을 최대 42% 인상하고,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면서 인플레율은 한때 30년 이래 최고치인 30%가까이(연 평균 23.5%) 치솟았다. 이집트 파운드화의 가치는 최근 2달 사이에 절반으로 떨어졌고, 나일강 상류댐 문제로 수단, 에티오피아 등 인접국들과 분쟁 위기도 잠재해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이집트 청년 실업률은 33%를 넘는다. 무바라크 집권기 30년보다 엘시시 집권 4년 간 발생한 테러가 많을 정도로 치안도 불안정하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엘시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4년 전 같지 않다. 이집트 이븐 칼둔 개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엘시시 대통령 지지도는 집권초 92%에서 최근 65%로 떨어졌다. 국가채무 감소로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11월 이집트의 신용평가를 ‘안정’에서 ‘긍정’으로 상향했지만 국민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인 살라 바유미(50)는 미들이스트아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서류상으로 경제가 나아진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태반”이라며 “다음 대통령이 누가되든 지금의 경제난을 벗어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찬기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비교정치학)는 “엘시시가 재선된다고 해도 빈부격차 해소와 경제발전이 따라주지 않으면 큰 사회적 혼란이 예상된다”며 “혁명 피로증이 있어 지금 이집트 국민들이 당장 길거리로 뛰쳐나오지 못하지만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도 “이집트 국민들은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혼란이 지속되자 군부가 다시 집권하면 치안이 유지되고 경제가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로 엘시시를 지지했다”며 “이집트 국민들은 선거로 집권세력에 타격을 줄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엘시시 지지율이 80% 이하로 낮아진다면 실망감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정치경제팀장)은 “중동지역은 ‘빵 문제’로 혁명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엘시시로 상징되는 군부가 경제의 분배발전을 이행하지 못하면 중산층들이 다시 들고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엘시시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엘시시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칼레드 알리 변호사 EPA 연합뉴스
칼레드 알리 변호사 EPA 연합뉴스
아흐메드 샤피크 전 이집트 총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흐메드 샤피크 전 이집트 총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미 아난 전 이집트 육군 참모총장 EPA 연합뉴스
사미 아난 전 이집트 육군 참모총장 EPA 연합뉴스
모하메드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의원 EPA 연합뉴스
모하메드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의원 EPA 연합뉴스
모타다 만수르 AP 연합뉴스
모타다 만수르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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