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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업] 송강호가 그린 ‘시대의 얼굴’ 4

입력
2017.07.1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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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 쇼박스 제공
영화 ‘택시운전사’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 쇼박스 제공

배우 송강호를 만나면 역사 속 인물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 같은 감흥이 찾아온다.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그의 필모그래피 때문이다.

내달 2일엔 1980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로 돌아온다. 송강호는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와 함께 광주로 향한 택시운전사를 연기한다. 광주의 진실을 목격한 소시민의 각성을 희극과 비극을 버무려 내놓는다.

이 영화에서도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피하지 않는 송강호의 연기적 신념이 빛난다. 그의 출연작을 이어 붙이면 한 시대가 온전히 복원되는 느낌이다. 송강호의 연기를 통해 관객들이 목격한 한국 근현대사의 장면들을 찾아봤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공동경비구역 JSA’.

‘공동경비구역 JSA’(2000)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을 통해 분단 시대의 비극을 그렸다. 박찬욱 감독을 대중적으로 알린 작품이면서 한국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걸작이다. 개봉 17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어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가 더 아프게 다가온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총격사건이 벌어져 북한 병사 정우진(신하균)과 최 상위(김명수)가 사망하고, 북한 병사 오경필(송강호)과 남한 병사 이수혁(이병헌)은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수사를 위해 파견된 중립국 감독위원회 책임수사관 소피(이영애)는 남북한 당국의 은폐에도 이수혁을 설득해 진실에 접근해 간다. 그 과정에서 남북한 병사들 사이에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 비무장지대를 수색하다 지뢰를 밟은 이수혁이 오경필과 정우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이를 계기로 남북한 병사들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정을 키워간다. 북한 측 지하벙커에서 만나 공기 놀이와 닭싸움을 하고 김광석의 노래를 함께 듣는 병사들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위태로운 분단 현실을 상기하게 만든다.

송강호의 연기는 희극조차 비극의 전조로 느껴지게 하는 탁월한 변주를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에는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파국으로 치닫는 개인의 운명을 묵직한 연기로 떠받친다. 영화팬 사이에 회자되는 ‘송강호가 웃고 있으면 영화는 슬프다’라는 명제는 이 영화에도 적용된다. 송강호라는 걸출한 배우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린 작품이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는 격동의 시대가 응축돼 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는 격동의 시대가 응축돼 있다.

‘효자동 이발사’(2004)

순박한 이발사가 대통령의 이발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코미디 영화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1961년 5.16 군사쿠데타와 1979년 10.26 사태 등 암울한 시대를 한 자리에서 겪어낸 소시민의 눈으로 격동의 시대를 그려낸다.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에도 비유된다.

청와대 인근 효자동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성한모(송강호)가 주인공. 청와대의 이웃답게 한모는 나랏일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3.15 선거 때는 야당 기표 용지를 몰래 먹어버리기도 했다. 5.16 이후 중고생 삭발령이 떨어져 이발관은 나날이 번창하고, 4.19 혁명이 일어나던 날 태어난 아들 낙안(이재응)이 초등학생이 됐을 때 한모는 우연히 대통령 경호실장의 눈에 띄어 대통령의 이발사로 발탁된다. 대통령의 얼굴에 가위와 칼날을 들이대는 두려움 속에 청와대의 살벌한 권력투쟁까지 지켜봐야 하는 그의 하루하루는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러던 어느 날 간첩이 청와대 뒷산까지 잠입한 1.21 사태가 일어나고, ‘설사하는 사람이 간첩’이라는 정부 발표에 한모는 마침 설사병에 걸린 아들 낙안을 경찰서로 데려간다. 낙안이 가혹한 고문으로 다리를 못 쓰게 된 뒤에야 한모는 정치 권력에 의구심을 품는다.

권력 앞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던 소시민의 삶이 송강호의 희로애락으로 빚어진다. 낙안의 다리를 고치기 위해 전국을 찾아다니는 한모의 부성애는 너무나 절절해 코믹한 상황에서도 눈물을 자아낸다. 여러 역사적 상징과 암시가 숨겨져 있고 주제도 가볍지 않지만, 송강호의 연기는 이 모든 것들을 무난하게 설득해낸다.

송강호의 연기력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영화 ‘변호인’.
송강호의 연기력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영화 ‘변호인’.

‘변호인’(2013)

송강호의 대표작을 굳이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많은 이들이 바로 이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변호인’에 출연한 송강호는 지난 정부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이 영화를 본 1,000만 관객에겐 ‘최고의 명배우’로 추앙 받았다.

1980년대 부산에서 활동한 세무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이 시국 사건을 변호하면서 인권변호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5공 시절 대표적 용공조작사건인 부림사건과 이 사건을 변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했다. 부동산 등기와 세금 자문으로 돈을 벌면서 속물이란 소리를 듣던 우석은 우연히 7년 전 밥값 신세를 진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시국 사건에 연루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국밥집 주인 순애(김영애)의 부탁으로 구치소 면회를 갔다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진우를 보고 충격에 빠진 우석은 진우의 변호를 맡게 된다.

조작된 증거와 허위 자백으로 모든 판단을 끝낸 재판부에 맞서 우석이 법과 상식으로 논박하는 5차례의 공판은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3분간 롱테이크(편집 없이 길게 촬영하는 것)로 촬영한 2차 공판 장면은 특히 압권이다. 늘 대단한 연기를 보여줬음에도 또 한번 대중의 기대를 넘어서는, 한 차원 다른 연기였다. 훗날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된 우석을 변호하기 위해 재판에 출석한 99명의 변호사들이 판사의 호명에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엔딩 장면에선 폭풍 같은 감동이 몰려온다. 이 영화로 송강호라는 이름은 한국영화사에 어떠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송강호가 이중 스파이를 연기한 ‘밀정’.
송강호가 이중 스파이를 연기한 ‘밀정’.

‘밀정’(2016)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김지운 감독과 8년 만에 다시 만난 영화다. 지난해 7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송강호의 티켓 파워를 입증했다.

영화는 황옥 경부 폭탄사건을 모티브로, 경성에 폭탄을 반입하려는 무장항일단체 의열단과 이중스파이 이정출(송강호) 사이에서 펼쳐지는 긴박한 암투를 그렸다. 임시정부를 배반하고 일본 경찰이 돼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정출은 의열단의 뒤를 캐라는 특명을 받고 고미술상으로 신분을 위장한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한다. 두 사람은 서로 정체를 알면서도 이를 감춘 채 의도적으로 가까워진다. 이후 이정출은 의열단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나는데, 그곳에서 의열단 단장 정채산(이병헌)을 만나 도리어 그에게 포섭된다. 폭탄을 실은 열차가 경성으로 출발하고, 의열단 내부의 밀정으로 인해 의열단원들은 경성에서 차례로 체포된다. 그리고 이정출은 의열단의 마지막 거사를 준비한다.

양쪽 모두에서 존재를 의심 받는 이정출의 시대적 숙명이 영화에 쓸쓸하고 비장한 무드를 조성한다. 송강호는 친일과 항일을 오가며 회색 지대에 선 이중스파이 이정출의 흔들리는 신념을 말이 아닌 표정과 눈빛, 특유의 ‘정서’로 설득해낸다. 이정출이 재판에서 결백을 주장하며 끝내 무너지는 장면에선 송강호의 장악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송강호의 ‘시대극’ 시리즈에서 빠질 수 없는 명작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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