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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중]21세기 술탄 등장이냐, 야권의 반란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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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중]21세기 술탄 등장이냐, 야권의 반란이냐

입력
2018.05.10 14:5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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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정의개발당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앙카라=AFP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정의개발당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앙카라=AFP 연합뉴스

“터키 국민들이 ‘그만하면 됐다(enough)’고 하면, 바로 물러나겠다.”

6월24일로 당겨진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재선에 도전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자신이 소속된 정의개발당(AKP) 당원 집회에서 배수진을 치며 선거 승리를 다짐했다. 자진 사퇴까지 입에 올리며 결의를 다졌지만, 터키 국민들의 반응은 의의로 싸늘했다. 곧장 트위터에는 “그래, 충분했다”로 화답하는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좋다, 됐다”를 뜻하는 터키어 ‘타맘(#TAMAM)’ 해시태그가 순식간에 소셜미디어(SNS)에 도배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에르도안과 집권여당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터키는 양극단으로 갈라졌다”는 분석으로 선거 전망을 대신했다. 현지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에르도안의 재선 성공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러나 ▦심상치 않은 경제난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 ▦총궐기에 나선 야권연대 등 에르도안의 승리를 무난히 점치기에는 위협 요소가 적지 않아 보인다.

21세기 술탄을 노리는 에르도안

외신들은 에르도안을 두고 ‘21세기 술탄’이란 표현을 즐겨 쓴다. 술탄은 이슬람교의 최고 권위자인 칼리프가 임명한 정치적 지배자로, 정치 행정 군사 분야의 실권을 장악한 황제나 다름 없다.

실제 에르도안은 술탄이 되고자 차근차근 단계별로 총력전을 밟아왔다. 그의 정치 역정 전반부의 키워드는 경제였다. 터키 수도 이스탄불 시장에서 시작해 2003년부터 10여 년간 터키의 총리를 맡아 국정을 이끌었고, 2014년에는 터키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직선제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터키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비결은 친 서민 정책과 비약적인 경제 성과였다. 에르도안은 총리 재임 시절 마이너스였던 경제성장률을 10%까지 끌어 올렸고, 건강보험 개혁 등 사회보장 체제도 강화했다. 당시 터키 국민들 사이에서 에르도안은 “신의 선물”로 추앙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후반부는 권력 강화로 요약된다. 신호탄은 지난해 단행한 개헌이었다. 총리 중심의 의원내각제를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는 게 골자였다. 개헌안은 당장 이번 6월 대선부터 발효되는데, 5년 중임을 허용했다는 것이 포인트다. 새로운 헌법 하에서 연임이 가능하기에, 이번에 재선에 성공하면 2028년까지 집권할 수 있게 된다.

국가비상사태를 유지하며 선거를 치르겠다는 발상도 그 일환이다. 에르도안 정부는 2016년 7월 군부 쿠테타가 발생하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7차례 연장하고 있다. 당시 배후로는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궐렌이 지목됐는데, 최근까지도 ‘궐렌 추종자들’이란 딱지를 붙여 야당 정치권은 물론 군부와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숙청이 진행되고 있다. 에르도안 정부는 쿠테타의 싹을 잘라버리는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결국은 반대파 제거 작업이라는 비판이 다수다.

정점은 대선 날짜를 일방적으로 바꾼 것이다. 터키 대선은 내년 11월로 예정돼 있었지만,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AKP)은 최근 1년 반이나 앞당기는 승부수를 띄웠다. 에르도안은 시리아 내전 상황 관리 등 국정 안정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최근 터키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재선 가도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지지율 하락이 부담돼 조기 대선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총궐기 나선 야권, ‘암컷 늑대’ 대항마로 급부상

에르도안에게 맞선 터키 야권 역시 만만치 않은 총력전을 펼칠 태세다. 에르도안에게 도전장을 던진 후보는 일단 세 사람이다. 터키 제1야당인 중도 좌파 성향의 공화인민당(CHP)의 무하렌 인제 의원, 우파 성향의 좋은당(IYI Parti) 대표 메랄 악셰네르 대표, 쿠르드계 소수 집단을 대변하는 좌파 성향 인민민주당(HDP)의 셀라핫틴 데미르타시 전 대표까지 가세했다.

이들 개별 후보의 지지율은 아직 에르도안을 넘어서기는 역부족이다. 에르도안은 꾸준히 50%대 안팎 지지율을 유지하는 반면, 악셰네르(30%), 인제(20%), 데미르타시(10%)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이 합친다고 하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이념적 성향이 다른 CHP와 좋은당이 선거연대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들끼리 경선을 치러 야권 단일 후보를 결정한 뒤, 탈락한 후보도 ‘술탄 에르도안’을 저지하기 위해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야권연대를 성사시키기 위해 ‘의원 임대’라는 편법도 썼다. 창당한 지 6개월이 채 안 되는 데다 의석도 5석 밖에 불과한 좋은당이 선거 참여를 박탈 당할 위기에 처하자, CHP가 15명의 의원을 전격 입당 시킨 것이다. 터키에선 20명 이상 의원을 보유한 정당은 선거에 나갈 수 있다.

이 같은 조치는 야권의 유력한 대항마인 악셰네르를 살리기 위해서다. 그리스 이민자 출신으로 터키 내무장관을 지낸 보수 성향 정치인 악셰네르는 지난해까지 우파 야당 민족주의행동당(MHP)소속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제 강화 개헌안이 추진되자, 탈당해 IP를 창당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강단 있는 언변으로 ‘반(反) 에르도안’ 여론을 주도해 암컷 늑대 ‘아세나’란 별명을 가졌다.

악셰네르가 주목 받는 배경에는, 보수 성향이 강한 터키 유권자들의 표심을 갈라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에르도안과 악셰네르의 지지층은 겹치는 부분이 많다. 보수 표심에 더해 선거 연대로 등에 업은 중도 좌파까지 흡수할 수 있으니, 외연 확대 측면에선 악셰네르가 경쟁력이 더 높은 것도 사실이다. 현지 여론조사에선 에르도안이 과반에 못 미쳐 결선투표로 이어지면 악셰네르 후보가 에르도안을 1%포인트 차로 앞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51% 찬성으로 가까스로 통과한 개헌안을 근거로 “유권자들은 새로운 보수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에르도안이 시리아에 대한 재공격을 선거 공약으로 내건 것도 악셰네르를 견제하기 위한 성격으로 보인다. 시리아 아프린의 쿠르드족에 대한 공격 등 잦은 군사작전 감행에 대해 에르도안을 다룬 평전 ‘새로운 술탄’(The New Sultan)의 작가 소너 카갑타이는 “절묘한 한 수”라고 평한바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반미 감정과 민족주의가 에르도안 지지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에르도안의 한 수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미지수다. 당장 에르도안의 브랜드였던 경제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터키 리라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고 인플레이션도 급등하고 있다. 군사 작전에 대한 피로도도 커지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60세 알리프 툴레씨는 “미국과 터키는 수년 간 나토 동맹국으로 지내왔지만 국경에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으며 나는 단지 평화를 원할 뿐”이라고 에르도안의 강경한 군사 작전에 반대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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