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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서 눈물… 이하늘 “촛불 꺼지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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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서 눈물… 이하늘 “촛불 꺼지지 않았으면”

입력
2016.12.1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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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DJ DOC 멤버인 이하늘은 '퍼블릭 에너미'란 문구가 적힌 후드티를 입고 최근 촛불집회 공연과 시위에 참여했다. 흑백으로 처리된 박근혜 대통령 이미지에다 과녁을 조준한 디자인을 직접 했다.
그룹 DJ DOC 멤버인 이하늘은 '퍼블릭 에너미'란 문구가 적힌 후드티를 입고 최근 촛불집회 공연과 시위에 참여했다. 흑백으로 처리된 박근혜 대통령 이미지에다 과녁을 조준한 디자인을 직접 했다.

국회로 간 이하늘, 탄핵 의결에 시민들과 ‘강강수월래’

경기 고양시에 사는 그룹 DJ DOC 멤버 이하늘(45)은 지난 9일 차를 타고 서울 여의도로 향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안 의결 결과를 현장에서 지켜보고 싶어서였다. 이하늘은 국회를 코 앞에 두고 서강대교에서 발목을 잡혔다. 차가 밀리는 금요일 오후인데다 탄핵 관련 때문인지 경찰이 교통 통제를 해 다리에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결국 그는 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다리를 건넜다. 국회 앞에 도착하니 이미 박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뒤였지만, 상관 없었다. 이하늘은 국회 앞에서 탄핵 가결을 축하하며 강강술래를 추는 시민들 대열에 뛰어 들었다. 흥을 뒤로 하고 보니 집에 가는 길이 막막했다. 이하늘은 택시가 잡히지 않아 한참을 추위에 떨다가 결국 히치하이킹을 했다. 국회에서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한 언론사의 차량이었단다. 이하늘은 “그간 역사적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한 부채의식이 있었다”고 국회까지 간 이유를 들려줬다.

그룹 DJ DOC가 최근 서울광장에서 '삐걱삐걱'과 '수취인 분명' 등을 부르며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그룹 DJ DOC가 최근 서울광장에서 '삐걱삐걱'과 '수취인 분명' 등을 부르며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미스’ 표현 빼고 작은 무대서 공연… 이하늘의 ‘이대도강’

이하늘은 다음 날인 10일에도 거리로 나왔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무대에 서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25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비판 곡 ‘수취인분명’을 낸 뒤 ‘미스 박’ 등의 가사가 여성 비하적 표현으로 구설에 오른 뒤 갖는 첫 무대였다. 가사 논란으로 촛불집회 공연이 갑작스럽게 취소된 후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자리다.

DJ DOC는 촛불 집회 공연 재성사로 더욱 관심이 쏠린 ‘수취인분명’의 일부 가사를 바꿔 무대에 섰다.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서가 아닌 여성으로 공격한다는 비판을 받은 ‘미스 박’에서 미스를 모조리 뺐다. “미스 박 YOU”를 “박 YOU”로, “잘 가요 미스 박 세뇨리땅”을 “잘가요 박 새뇨리당”으로 바꿔 불렀다. 아가씨라는 뜻의 스페인어 세뇨리따를 활용해 성차별 표현이란 지적을 받은 “세뇨리땅”도 “새뇨리당”으로 바꿔 풍자 대상(새누리당)을 명확히 하고, 성적인 요소도 지웠다. “하도 찔러 대서 얼굴이 빵빵”은 “하도 찔러 대서 됐어 빵빵”으로 고쳤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박근혜 하야’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몸을 흔들며 DJ DOC가 부른 ‘수취인분명’을 즐겼다. 남편과 함께 DJ DOC의 무대를 지켜 보던 이민희(38)씨는 “가사가 직설적이라 속 시원했다”고 말했다. 여성 비하적 표현에 대해서는 “‘미스’란 표현이 걸리긴 했다”며 “하지만 가사를 수정했고 다른 부분에선 원래 여성 혐오적이라 느끼지 않아 괜찮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DJ DOC가 선 무대는 촛불집회 본 무대가 아니다. ‘민주주의국민행동’이 오후 3시에 연 사전 행사라 무대는 작았다. 참여한 연예인도 DJ DOC 한 팀 뿐이었다. 촛불집회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에 그것도 작은 무대에서 가사까지 바꿔 거리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공연 직후 한국일보와 만난 이하늘은 “다른 뜻은 없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이젠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고, 날이 추워지면서 촛불이 줄어들 수도 있어 나왔어요. 박 대통령 탄핵뿐 아니라 여러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 촛불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칫 힘 빠질 수 있는 시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불러 주셔서 왔어요.”

‘수취인분명’의 가사 수정 이유를 묻자 이하늘은 “이대도강(李代桃僵)”을 얘기했다.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해 죽는다는 말로, 작은 손해를 감수해야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광장에 나와 ‘촛불 민심’에 힘을 보태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가사 수정과 공연의 크기에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한 발 물러섰다는 뜻이다. 이하늘은 “우리가 부족하지만 맞춰 갈 수 있는 부분은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하늘은 민주주의국민행동과의 인터뷰에선 가사 논란에 대해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란 걸 느꼈다”며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고 생각도 많이 했다”고 답했다.

‘공공의 적’ 티셔츠 만들고 어머니 식당엔 ‘박근혜 콩밥’ 메뉴

이하늘은 촛불집회 무대에서 ‘하야하라’는 문구가 적힌 배지를 왼팔에 달고 히트곡 ‘DOC와 춤을’의 후렴구에 “하야야하야하야야”란 대목을 더해 시민들의 호응을 샀다. 이하늘은 공공의 적이란 뜻의 ‘PUBLIC ENEMY’란 문구와 흑백으로 처리된 박 대통령의 이미지를 과녁으로 조준한 도안이 새겨진 흰색 후드티를 입었다. 무대를 위해 이하늘이 직접 디자인한 옷이다. 이하늘만 박 대통령의 실정에 실망한 게 아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하늘의 어머니는 백반 메뉴로 ‘박근혜 콩밥’을 새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이하늘은 ‘광장’을 떠나지 않았다. 광화문 인근 허름한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배를 채운 뒤 다시 거리로 나갔다. 해가 진 광화문 광장을 그는 매니저 없이 홀로 걸으며 시위 대열에 껴 “하야하라”를 외쳤다. 그를 알아 본 시민에겐 “파이팅”이라며 화답했고, 하이파이브를 요청한 시민에게는 한 손을 마주치며 연대를 확인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근엄하고 소중한 촛불 앞에 화려한 연예인은 없었다. “이 정권에서 죽은 분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서 촛불집회 본 무대 한 발언자의 호소를 듣던 이하늘은 지난해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 대포를 맞은 뒤 사망한 “백남기씨” 이름을 듣자 결국 눈물을 떨궜다.

“전 진보 혹은 보수도 아녜요. 너무 화가 나서 나왔어요. 생각해보니 이렇게 진심을 담아 노래해 본 적이 있냐는 생각도 드네요. 박 대통령 탄핵 가결은 이제 첫 단추를 꿰었을 뿐이예요. 시간 되면 이 사태를 만든 사람들 명단 뽑아 노래를 만들어 볼까 싶어요.”

글·사진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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