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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브이로거!] “여기는 기자실, 깨끗하죠?” 대사는 뚝뚝... 발연기만 ㅠㅠ

입력
2017.12.13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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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보다 영상 편한 세대의 일기장

무한클릭 받으려면 장비는 필수

삼각대·셀카봉 8000원에 해결

#녹화 버튼은 눌렀는데 ‘뭘 담지?’

에잇 먹방이나 “맛있다” “응...”

고깃집 사장님 “그래서 되겠어...”

본보 견습기자가 6일 용산구 용산동2가 해방촌의 한 카페에서 겨를 취재를 위해 브이로그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본보 견습기자가 6일 용산구 용산동2가 해방촌의 한 카페에서 겨를 취재를 위해 브이로그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앉은 자리에서 피자 열 판을 먹지 못해도, 신들린 듯한 화장 솜씨가 없어도 괜찮다. 최첨단 카메라도 필요 없다. 일상을 휴대폰 카메라로 그럴 듯하게 담으면 그것이 바로 브이로그(V-log)니까. 그래서 본보 견습(수습)기자 5인이 브이로그 제작에 도전했다. 글쓰기에만 몰두해 영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영상 문외한’들은 과연 유튜브(동영상 공유사이트) 이용자들의 무한 클릭을 유도하는 브이로그를 만들 수 있을까, 좌충우돌 체험기를 담았다.

장비는 8000원으로 해결했지만…

촬영을 하루 앞둔 5일, 1만원 이하로 ‘모든 걸 살 수 있다’는 잡화점을 찾았다. 필요한 장비는 휴대폰 거치 삼각대와 원거리 촬영이 가능해 화면에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걸 막아줄 셀카봉. 각 3,000원, 5,000원에 샀다. 2,000원짜리 삼각대도 있지만 이왕이면 1,000원 더 투자하는 걸 권한다. 2,000원 주고 산 삼각대가 휴대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는 바람에 다시 사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휴대폰 카메라는 장삼이사들이 쓰는 S사의 S8과 L사의 V20을 사용했다. 고수들도 “영상 찍기에 충분하다”고 인증한 제품이다.

6일 오전 4시. 견습기자 5인은 각자 숙식하는 서울 시내 경찰서 기자실에서 기상과 동시에 빨간색 녹화 버튼을 눌렀다. “여기가 00경찰서 기자실입니다. 견습기자들은 여기서 잠을 잔답니다.” 뻔한 설명 뒤 이어진 민망한 침묵. 5초가 지났을까, “정말 깨끗하죠”라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진 후 촬영 정지 버튼을 누르고 영상을 곧바로 휴지통 폴더에 버렸다. 스스로도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는 ‘발연기’ 장면이었으니 말이다.

본보 견습기자가 6일 용산구 용산동2가 해방촌의 한 고깃집에서 취재를 위해 브이로그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본보 견습기자가 6일 용산구 용산동2가 해방촌의 한 고깃집에서 취재를 위해 브이로그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이부자리를 박차고 휴대폰을 장착한 셀카봉을 든 채 복도로 나왔다. 녹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당직 중이던 경찰관과 맞닥뜨렸다. ‘휴대폰 보면서 혼잣말하면 미친 사람으로 오해하겠지’라는 생각에 재빨리 셀카봉을 내렸다.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도 차마 카메라를 들지 못했다. 택시운전사가 브이로그 촬영 모습을 수상히 여겨 목적지가 아닌 정신병원으로 데려 갈지도 모를 일이다. 브이로그 촬영은 참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얼굴에 철판을 깔만한 용기가 5인에겐 없었다.

카메라를 든 지 두 시간 만에 5인이 모였다.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되겠다 싶어 대책회의를 했다. 짝을 지어 움직이기로 했다. 홀로 민망함은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여성 2인은 크리스마스 파티 선물도 살 겸 용산구에 위치한 쇼핑몰로 향했다. 산타클로스 옷 모양 니트, 파티용 머리띠와 귀걸이에 향초까지. 파워 브이로거(V-loger)라면 쇼핑 모습을 발랄하고 자연스럽게 찍었을 텐데 이미 녹초가 된 2인은 휴대폰을 드는 것 조차 버거웠다. 쇼핑한 물건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영상인 ‘하울(Haul)’을 시도했을 때는 이미 혼이 나간 상황이었다.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로 상품과 얼굴을 찍고 주절주절 떠들었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없다. 브이로거가 되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을 뿐.

남성 3인이 향한 곳은 용산구 해방촌의 한 고깃집. 음식을 소개하고 맛나게 먹는 브이로거들처럼 휴대폰 두 대를 테이블 양 옆에 삼각대로 고정해놓고 ‘먹방’을 시작했다. 셋이 모여 민망함은 덜했지만 문제는 ‘대사’였다. “맛있다” “응 맛있네” “…” 촬영을 의식해 대화가 뚝뚝 끊겼다. 카메라 앞에서 묵묵히 고기 5인분과 밥 세 그릇을 비우는 3인을 보다 못한 사장님의 한 마디, “아니 그렇게 해서 영상 올릴 수 있겠어? 이게 어느 부위다, 맛이 어떻다 얘기를 해야지!”

영상 편집은 또 다른 산이었다.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Adobe Premiere Pro)’라는 편집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지만 능숙하게 다루려면 최소 한 달은 필요하단 말에 포기. 브이로거들이 두 번째로 애용한다는 ‘파이널컷 프로(Final Cut Pro)’는 A사 노트북 전용이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문서 작업에 최적화(?)된 기자 노트북으로 영상 편집은 사치인가 보다. 최후 수단인 ‘무비메이커’ 휴대폰 앱을 이용해 영상을 자르고 붙일 수는 있었다. 그러나 3시간이 넘는 영상 원본에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이어 붙여야 재미있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 앱으로는 자막 넣기도 불가능했다. 결국 본보 영상팀에 SOS를 요청했다.

본보 강유빈, 박지윤 기자가 6일 서울 구로경찰서 기자실에서 구입한 물건을 소개하는 브이로그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본보 강유빈, 박지윤 기자가 6일 서울 구로경찰서 기자실에서 구입한 물건을 소개하는 브이로그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브이로그 고수들의 시작은 남달랐을까?

‘쉬워 보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는 교훈을 안긴 브이로그 체험 후 유명 브이로거 6인을 만나봤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왜 이런 영상을 찍는지 궁금증을 해소하자는 이유가 반, 5인이 촬영하면서 느꼈던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꿀팁을 듣자는 이유가 반이었다.

신혼생활의 이모저모를 담은 ‘쭘이지TV’의 이지훈(29) 박주미(26)씨 부부는 “브이로그는 우리 둘의 역사이자 기록”이라고 말했다. “글로 쓰는 블로그보다 현실을 세세하게 담아내고 보기에도 편리하다”며 일상 기록을 위해 브이로그를 찍는다고 했다. 한국에 교환학생 온 미국 대학생의 소소한 일상 영상을 올리는 두리(22ㆍ본명 황두리)도 비슷하다. 그는 “집 근처 풍경, 만나는 사람, 요즘 하는 일, 가는 곳 등을 일기처럼 기록해보고 싶어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자기 일상을 공유하는 브이로거도 있다. 뷰티 유튜버로 먼저 이름을 알린 김갈릭(28ㆍ본명 김하늘)은 “뷰티 채널 구독자들이 브이로그를 올려달라고 먼저 요청했다”며 “소소한 일상 공개로 기존 구독자와 공감대를 넓힐 수 있었다”고 했다. 요즘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유튜버 시드니(25ㆍ본명 김서윤)도 처음에는 뷰티만 다루다 브이로그용 채널을 따로 만들었다. 그는 “메이크업 영상이 아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며 “브이로그는 인간적인 매력으로 어필하는 콘텐츠”라고 말했다.

단순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브이로그의 매력에 푹 빠진 경우도 있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직장인 유튜버 쥬히(28ㆍ본명 최주희)는 “대학원에서 소셜미디어 마케팅 수업을 듣던 중 ‘일반인도 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고 밝혔다. 뉴요커의 일상과 결혼 준비 과정을 담아낸 그의 브이로그 구독자가 1만을 돌파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본보 견습기자들이 6일 용산구 용산동2가 해방촌의 한 고깃집에서 취재를 위해 브이로그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본보 견습기자들이 6일 용산구 용산동2가 해방촌의 한 고깃집에서 취재를 위해 브이로그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고수들이 말하는 브이로그 필살기

얼굴 두꺼운 사람만 유명 브이로거가 되는 건 아니다. 야외 촬영 때 ‘보는 눈’이 신경 쓰이는 건 이들도 마찬가지다. 두리는 “워낙 내성적이라 1년째인데도 부끄럽다”며 “로봇 같다는 피드백도 종종 받는다”고 털어놨다. 특별한 극복법도 없다. 그저 “용기 내서 찍다 보면 적응된다”는 위로가 팁이라면 팁. 대학생 브이로거 여신민또(22ㆍ본명 김민정)는 “막상 해보니까 사람들이 한 번 쳐다보고 말더라”며 “지금은 혼자 카메라 들고 이야기하며 돌아다니는 게 익숙해졌다”고 했다. 민망함을 도저히 못 참겠다면 굳이 나가지 않고 실내 촬영만 하는 것도 방법이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땐 구독자와 대화하는 상상을 해보자. 쭘이지TV를 운영하는 부부는 “카메라 뒤에 신혼부부나 결혼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하며 말을 건다”고 했고, 김갈릭도 “이전 브이로그에서 받은 질문에 답을 해주는 등 구독자와 소통하다 보면 자연스레 얘깃거리가 생긴다”고 말했다.

말이 끊기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시드니는 “오디오를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말을 계속하는 건 어색하다”며 “브이로그의 매력은 자연스러움”이라고 강조했다. 쥬히와 두리도 “할 말이 없다면 주위 풍경만 찍어도 충분히 좋은 영상이 나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촬영시간이 길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무리하지 말고 그때그때 상황과 체력에 맞춰 조절하는 편이 좋다. 기존 브이로거들 역시 짤막한 영상클립을 3일 정도 모아 이어 붙인다는 사람, 1시간만 찍고 만다는 사람, 카메라를 하루 종일 켜두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었다.

영상을 편집할 때도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다. 유명 브이로거들이 ‘프리미어’ ‘파이널컷’ 등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는 전문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상을 잘라 붙이고, 배경음악과 자막을 넣는 기본 편집만 한다. 완벽한 보정이나 화려한 효과를 주는 건 어렵기도 할뿐더러,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브이로그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게 유튜버들의 일관된 답변이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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