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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열심히’와 ‘잘’에 대하여

입력
2017.11.22 15: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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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명륜동 골목길을 가다가 담벼락에 적힌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으로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知者不如樂之者)’라는 글귀지요.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풀이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게 눈에 들어온 순간 저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읽고 마음의 양식 삼기를 바라는 동네 사람들의 갸륵한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와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한동안 멈춰 서서 담벼락의 글을 음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음미하다 보니 ‘재능이 있는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만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비슷한 다른 경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지요.

그런데 정말 요즘 세상에 어떤 사람이 더 나은 겁니까? 아니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떤 사람을 더 중시합니까? 오늘날 우리 기업들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까, 일을 잘 하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까? 성실을 중시합니까, 능력을 중시합니까?

자고로 삶을 잘 사는 사람은 능력으로 일을 하지 않고 성실로써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재주가 있고 능력이 있어도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성실히 살지 않는 것이고, 그러면 인생에서 실패하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토록 상식이 있는 세계에서는 일과 삶의 관계를 조망하며 일 중심주의와 기능주의를 경계하였지요. 사실 성실히 일하지 않고 재주나 능력으로 일하는 사람은 ‘쟁이’나 ‘꾼’은 될 수 있을지언정 사람다운 사람이나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혹 일은 잘 할지 몰라도 삶을 잘 사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와 반대되는 길을 가고 있고 반대되는 것을 요구합니다. 아니, 성실과 능력을 모두 요구해 인간을 그야말로 쥐어짭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성과를 내는 면에서 일을 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온갖 ‘스펙’이라는 것을 갖추기를 요구하지요. 한 인간이 스스로 일을 열심히도 하고 잘도 한다면 그것은 자기 행복을 위해 삶을 잘 사는 것이 되겠지만 사회나 기업이 성과를 내기 위해 능력자를 우대하고, 그럼으로써 서로 능력을 놓고 경쟁하게 하며, 모두 뛰어난 능력자가 되기를 요구한다면 이 성과주의에 인간은 불행해지고 희생되는 것이지요.

제가 1980년대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노숙자가 많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잘 사는 나라에 노숙자가 많을까 생각게 되었는데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그 이유 중에 큰 이유가 바로 일 중심주의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장인정신을 높게 평가하지만 그 장인정신이란 게 바로 일 중심주의와 같은 말이지요. 자기가 하는 일을 최선을 다 해서 열심히 할 뿐 아니라 어느 경지에 오를 때까지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날에는 자기 일에 보람을 느끼며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거였고, 그래서 행복을 주는 것이었지만 경쟁사회가 되고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한 세상이 되면서는 경쟁에 밀리고, 기업이 요구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면 그 사회나 기업에서 퇴출된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는 쪽으로 기능을 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1970년대 산업화가 되면서 점차 이렇게 바뀌기 시작하더니 97년 ‘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되면서 완전히 이런 사회가 된 것이지요. 이런 경쟁적이고 비인간적 삶이 싫어서 이민을 떠나고 시골로 가는 사람이 많아지는데,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좋지만 그럴 수 없는 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취업도 못하는 젊은이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만 할 뿐인 제가 슬픕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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