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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개헌이 아니라 대권 문제였다

입력
2014.10.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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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봇물 발언으로 촉발된 당청 갈등

청와대서 뒤늦게 작심하고 강경 대응

대권갈등은 모든 이슈 삼키는 블랙홀

이하 팝아트 작가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한 풍자 그림 포스터
이하 팝아트 작가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한 풍자 그림 포스터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논의는 블랙홀과 마찬가지여서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당분간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처럼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개헌 관련 발언들이 실제로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고, 사실상 블랙홀과 마찬가지로 정치ㆍ경제 이슈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김 대표가 “정기국회가 끝나면”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개헌 논의는 박 대통령이 강조했던 “당분간 자제”의 금도를 이미 넘어가버린 상황이다.

두 가지 의문이 국민을 혼돈스럽게 한다. 김 대표의 개헌 발언이 작심(作心)인가, 아닌가. 다른 하나는 치밀하게 계산된 청와대의 반응이 ‘당분간 자제’ 때문인가, 다른 의도가 있는가. 우선 김 대표의 작심 여부가 궁금하다. 3박4일 방중 마지막 날인 지난 16일, 베이징 일정을 마무리하고 상하이를 들러 귀국하는 날이었다. 한 호텔에서 수행 기자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졌다. 김 대표의 모두발언이 있었고, 수행 기자단과의 일문일답도 이어졌다. 이 때까진 개헌의 ‘개’자도 나오지 않았다.

공식 간담회를 마치고 앞자리 식탁(헤드테이블)으로 돌아가 7~8명의 기자들과 조찬을 시작했다. 개헌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 때였다. 한 기자가 “개헌, 대통령은 아직 이르다는 시각인데”라고 질문을 하자 김 대표는 자신의 평소 신념을 상세하게 늘어놓았다. 지난 8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했던 얘기 그대로다. 차이가 있다면 그 땐 “세월호 특별법 논의가 끝나면 개헌 문제를 논의할 시기”라고 말했고, 이번에는 ‘정기국회 후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것’이라고 했다. 식사 후 헤드테이블의 기자들은 40여명의 수행기자단과 대화내용을 공유했고, 김 대표의 ‘상하이 개헌 발언’이 국내에 일제히 보도됐다.

공당의 대표가 복수의 기자들 앞에서 하는 말에는 ‘그냥 해보는 얘기’가 있을 수 없다. 김 대표도 자신의 말이 보도될 것을 예상하며 말의 뉘앙스를 스스로 부연하기도 했다. “여행 마지막 날 경계심이 무너져 말 한마디를 잘못한 것”이라는 김 대표의 해명은 기자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작심하고, 청와대를 향해서, 대통령의 ‘당분간 자제’ 권고에 각(角)을 세우기 위해 ‘개헌과 봇물’이라는 발언을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발언이 나온 배경과 정황이 그렇게 보인다.

김 대표가 바로 다음날 자신의 발언이 “불찰이고 실수”라며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과 정황을 이해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그 발언이 공개되고 닷새 후인 21일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기자실을 찾아와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대통령의 뜻을 실어 작심하고 의도적으로 한 발언이 분명했다. 개헌 언급이 나온 지가 언젠데,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당청 간에 닷새라면 ‘갈등’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청와대 측에서 김 대표 측에 발언의 진의(眞意)를 물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물론이고 정무수석비서관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움직였다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김 대표의 개헌 언급을 계기로 당과 청와대의 갈등을 청와대 쪽에서 조장하고 기다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급기야는 득표율 3위의 최고위원이 “대표최고위원이 대통령에게 염장을 뿌리는 모습을 이대로 앉아서 볼 수 없다”며 자리를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국민들은 더욱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개헌이 아니라 대권이었다. 앞의 얘기들, 박 대통령의 말이나 김 대표의 말이나 ‘개헌’이란 단어를 ‘대권’이란 표현으로 치환해 놓고 보자. 오히려 자연스럽고 그 동안의 과정을 이해하기 쉽다. 뒤늦게 새누리당 내에서 당청 갈등에 훈수를 두겠다며 달려드는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 더욱 그렇다. 정치ㆍ경제 모든 현안을 뒷전으로 물리는, 이슈의 블랙홀이 되어갈 ‘대권 갈등’이 벌써부터 여권 내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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