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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홍준표 막말’의 쓸모

입력
2018.01.05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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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정권서 SBS도 KNN도 뺏겼다”

언론을 한낱 전리품 취급하는 망언

언론의 자성과 신뢰 회복 계기 돼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막말을 정면 비판한 SBS '8시 뉴스' 화면. SBS 캡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막말을 정면 비판한 SBS '8시 뉴스' 화면. SBS 캡처

언론과 그 종사자들을 향한 비난과 조롱이 도처에 무성하다. 다짜고짜 날아드는 ‘기레기’ 매도에 자주 무릎이 꺾이지만, 그 연유와 맥락을 살피면 새겨들을 비판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언론이 ‘동네북’이 됐다 한들, 이런 막말에는 욕지기가 나는 걸 참기 어렵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 나눈 대화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니까 SBS도 뺏겼어요. 부산의 KNN도 뺏겼습니다. 이제 방송국을 뺏어 아예.”(홍) “그것도 적폐네.”(이) “적폐가 아니고 그거는 강도죠.”(홍) 한 동석자는 추임새 넣듯 “조중동은 잘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홍 대표의 언론 관련 막말은 이미 여러 번 논란이 됐다. 대선 당시 유세에선 “SBS 그거 내가 ‘모래시계’ 드라마 만들어서 키운 방송”이라며 “집권하면 SBS 8시 뉴스 싹 없애 버리겠다”고도 했다. 그가 SBS 뉴스에 출연해 이 일에 유감을 표명한 게 불과 며칠 전이다.

모리배의 골방 객담이라면 귀 한번 씻고 말겠다. 그러나 현실 정치의 한 축을 차지한 제1야당의 대표, 적폐수사의 정점으로 간주되는 전직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취재진 앞에서 버젓이 주고 받은 말이다. “SBS‘도’ KNN‘도’ 뺏겼다”는 말이나 ‘조중동’ 운운에서, 새 사장이 취임해 겨우 정상화의 첫걸음을 뗀 MBC나 아직도 싸우고 있는 KBS는 물론, 사기업인 신문사들마저도 “뺏고 지켜야 할” 전리품 취급해 온 저들의 저급한 언론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10년 간 공영방송이 얼마나 철저하게 망가졌는지는 모두가 아는 바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뺏고 빼앗기는 한낱 전리품 취급해 온 언론이 기형적 지배구조를 악용해 손쉽게 장악할 수 있는 공영방송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언론은 누구의 것(편)인가, 초등학생이라도 제 언어로 답할 수 있을 이 질문을 다시 꺼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러 언론학자들이 분석했듯이 한국 언론에서는 1998년 국민의정부 출범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후 언론 사주나 경영진의 이념적 지향이 보도에 그대로 투영되는 ‘언론-정당 병행관계(press-party parallelism)’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언론학자 이재경은 자사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집단의 입장을 적극 반영해 결과적으로 사회나 집단 갈등을 조장하는 ‘갈등유발형 저널리즘’을 한국 언론의 핵심문제로 규정하기도 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한국 언론은 이런 진영 논리 안에서 혹은 그 언저리에서 권력 및 자본과 적극적 공생관계를 형성하거나 어정쩡하게 줄타기를 해왔고, 그 사이 언론의 생명인 신뢰를 잃었다.

홍 대표의 막말을 비판한 SBS 8시뉴스의 앵커는 클로징 멘트에서 “저희는 지금까지 자유한국당 소유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겠으나, 외람되이 한마디 하자면, 속 시원한 일갈로만 들리지 않는다. 보수 정권 10년 내내 SBS 출신의 청와대 행이 두드러졌던 탓이다. MB 정권의 하금열 비서실장과 최금락 홍보수석,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 박근혜 정권의 이남기 김성우 배성례 홍보수석, 허원제 정무수석이 SBS 출신이고, 현직에서 직행한 경우도 있다. “여당 시절에 (방송사) 위의 두뇌는 저희들이 어느 정도 지배를 했지만, 밑에 80~90% 기자ㆍPDㆍ작가들이 저쪽 편이 많았기 때문에 서로의 어떤 균형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넘어갔다"는 박성중 자유한국당 홍보본부장의 한탄에서 과거 SBS는 과연 자유로울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조중동은 잘 지키고 있다”는 말은 쇠락한 정치집단의 허무개그일 뿐일까. 이 망언에 대해 조중동은 왜 아무 말이 없을까.

역사가 말해주듯 오직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건 아니다. ‘홍준표의 막말’이, 역설적으로 언론을 뼈저린 반성으로 이끌고, 나아가 새로운 저널리즘을 모색하게 함으로써, (당장은) 추하지만 (언젠가는) 쓸모 있기를! 희망한다.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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