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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익이다” 오물 뒤집어쓴 ‘우익’의 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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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익이다” 오물 뒤집어쓴 ‘우익’의 본모습

입력
2017.04.0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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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오른쪽) 목사가 1970년대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중간집단 교육을 하고 있다. 이 교육에서 김세균, 신인령, 김근태, 천영세, 이우재, 한명숙, 윤후정 등이 배출됐다. 여성학의 뿌리도 이 교육에 있었고 박노해, 법륜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강원용은 문익환, 안병무와 함께 김재준의 한신그룹에 속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강원용(오른쪽) 목사가 1970년대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중간집단 교육을 하고 있다. 이 교육에서 김세균, 신인령, 김근태, 천영세, 이우재, 한명숙, 윤후정 등이 배출됐다. 여성학의 뿌리도 이 교육에 있었고 박노해, 법륜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강원용은 문익환, 안병무와 함께 김재준의 한신그룹에 속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김건우 지음

느티나무책방 발행ㆍ296쪽ㆍ1만7,000원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란 제목만 보고 ‘또 어줍잖은 뉴라이트 타령이냐’ 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우익에 대한 분식’이 아니라 ‘우익의 정명(正名)’이어서다. 이름과 존재를 제대로 딱 맞춰주자는 얘기다. ‘어버이’ ‘엄마’ ‘애국’ ‘태극기’ 등 요즘 들어 오염되지 않은 단어가 어디 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정명’ 또한 이명박 정부 당시 한차례 오염된 바 있다. 이 모든 오염의 근원을 꼽으라면, 결국 ‘우익의 오염’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책 제목 그대로 ‘대한민국의 설계자’로서의 우익, 그러니까 ‘친일 없는 반공 우익’을 찾아 나선다. 그 작업 끝에 주목하는 이들은 바로 일제말기 일본군에 동원대상으로 올랐던,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으로 상징되는 ‘학병세대’다. 그래서 부제도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이다.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를 결론 부분에 이렇게 써놨다.

“해방 후 정부 수립과정에서 친일 세력은 ‘우익’을 독점하려 했다. 그것이 자신들이 사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좌우 프레임’으로 득을 얻는 이는 누구인지, 따져보아야 할 이유도 이런 역사에 있다. (중략) 자신들 입장과 같은 극우적 국가주의가 아니면 모두 좌파로 내모는, 오늘날 우익을 사칭하는 사람에게도 그러했기를 바란다.”

주요 선거나 정책 결정 때마다 세몰이 도구로 쓰이는 ‘우파-좌파’ 구도가 실제로는 얼마나 웃긴 구분인지 떠올린다면, 충분히 더듬어볼 만한 얘기다. 제목에다 ‘대한민국’ ‘설계자’ ‘우익의 기원’ 같은 단어들을 주렁주렁 달아둔 것도, 오늘날 우익을 ‘독점’하고 ‘사칭’하는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다. 너희들도 어여 와 덥석 물으라는 미끼다.

일단 포인트는 설계자’들’이란 복수형. 그간 대한민국 수립, 발전, 성취를 두고 ‘이승만 – 박정희 영웅이냐’ 아니면 ‘우골탑 쌓아가며 자식 공부시키고, 손가락 잘려가며 노동한 민중이냐’는 이분법이 지배했다. 정치적으로는 정반대지만, 역사를 낭만적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일의 성패를 실제적으로 가르는 건 ‘영웅 혼자’, ‘민중 모두’가 아니라 일군의 중간 간부진 혹은 실무 집행자들의 아이디어와 역량이다. 이 계층이 1945년 대한민국에서는 어디쯤에 있었을까. 저자는 1943년 일제가 ‘반도인 학도특별지원병제’를 공표한 뒤 그 대상으로 간주했던, 고등교육을 받은 7,200여명에 이르는 조선 지식인 청년 집단을 지목한다.

우선 이들은 그 시절에 대학이나 전문학교를 다녔던, 조선 최고의 부유한 엘리트 집단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확실한 금수저들’이다. 또 한가지, 이들은 출생연도로 따지자면 1917년~1923년생이다. ‘친일 없는 우익’에 너무 환호할 게 아니다. 어쩌면 이들은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친일할 기회가 없었을 지 모른다. 친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세대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강렬한 세대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새 나라 건설의 주역은 나라 망해먹고, 일본에 붙어 산 기성세대가 아니라 신문물을 익힌 우리들이어야 한다는 자의식으로 똘똘 뭉쳤다.

김수환(오른쪽) 추기경이 학병 시절 찍은 사진. 학생 시절 김수환은 "나는 황국신민이 아니다"라고 했다가 후일 2공화국 총리가 되는 교장선생님 장면에게 호되게 뺨을 맞았다. 학병세대가 그 이전 세대를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 지 짐작케 하는 일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수환(오른쪽) 추기경이 학병 시절 찍은 사진. 학생 시절 김수환은 "나는 황국신민이 아니다"라고 했다가 후일 2공화국 총리가 되는 교장선생님 장면에게 호되게 뺨을 맞았다. 학병세대가 그 이전 세대를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 지 짐작케 하는 일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책에선 언급이 없지만 이들은 사실 ‘일제의 2등 국민’으로서 차별도 받았지만, 분단과 이념 대립 때문에 찌그러진 지금보다 훨씬 폭 넓은 대륙적 사고방식을 배우고 간직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제국 일본 아래서 주어진 혜택, 그 혜택에 대한 죄의식과 엘리트로서의 사명의식이 기묘하게 뒤섞인 학병세대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소설가 이병주의 다양한 작품들, 이 작품들에 기댄 국문학자 김윤식의 ‘한일 학병세대의 빛과 어둠’(소명출판)을 참고해볼 법하다. 이 책과 달리 좌익인 ‘김원봉 계열’ 학병세대로 ‘5ㆍ16혁명’의 이데올로그이기도 했던 황용주에 대해 안경환 전 서울대 교수가 쓴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까치)까지 읽어봐도 좋다.

저자가 여기에 하나 더 덧대는 건 서북지역의 기독교 세력이다. 조선시대 가장 차별 받은 곳이자, 청나라 인근지대로 외래 문물에 밝았던 평안도 지역은 ‘조선 성리학의 안티테제’로 서구 기독교를 가장 열렬히 받아들인 집단이었다. 이들은 광복 이후 들어선 공산주의 정권과 화합할 수 없었고 결국 월남 뒤 가장 강력한 반공집단이 됐다.

이런 그림 아래 추출된 ‘대한민국 설계자’에 속한 인물이나 집단 계열을 대략적으로 열거하면 이렇다. 장준하와 사상계, 서영훈과 적십자, 함석헌과 무교회주의 운동, 류달영과 덴마크 모델, 김재준과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그룹, 강원용과 크리스찬 아카데미, 가톨릭계 학병세대라 할 수 있는 김수환과 지학순 등등. 면면들만 봐도 벌써 ‘어라?’ 싶을 게다. 이들은 대한민국 우익들이 그토록 추앙하는 박정희 시대 내내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줄곧 내쳐지고 핍박 받았던 이들 아닌가. 이들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설계한 우익이란 말인가.

책 읽는 재미의 반은 그래서 저자가 수행하는 ‘미세조정’ 작업이다. 가령 반(反)박정희 투쟁의 1인자 장준하는 그 투쟁 때문에 박정희와 완전한 대척점에 서있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장준하를 ‘민족을 중시한 김구 계열’이라기보다 ‘반공을 중시한 이범석의 족청 계열’로 분류한다. 한국에다 덴마크 농업모델을 적용하고 싶어했던 류달영의 경우, 그 자신은 박정희 정권 초기 참여했던 ‘재건국민운동’을 끝내 군사정권에 배신당한 끔찍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저자는 그의 활동이 결국 새마을운동, 평생교육 등으로 지속적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박정희 최대 적수 중 한 명이었던 장준하. 그러나 둘 사이의 틈은 의외로 작았을 수도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정희 최대 적수 중 한 명이었던 장준하. 그러나 둘 사이의 틈은 의외로 작았을 수도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런 작업으로 저자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건 독재/반독재, 산업화/민주화라는 식의 통상적 이분법의 파괴다. 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박정희와 똑같은 ‘조국 근대화’였다. 그럼에도 박정희와 불화했던 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영역에 고루 걸쳐져 있는 전면적인 근대화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 ‘사상계’ 편집주간을 맡은 지명관은 이렇게 말한다. “근대화 노선은 같지만, 박정희 정권이 가는 길이 바른 근대화를 하고 있지 못하다.” 근대화를 경제적 근대화로만 환원시키고, 그 경제적 근대화 역시 양적 성장 하나로만 환원시키고, 그 양적 성장마저 몇몇 재벌의 성장으로 환원시킨, 여러 겹에 걸친 ‘환원의 근대화’가 지금 우리 사회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지적한 김덕영 카셀대 교수의 ‘환원근대’(도서출판 길) 논법을 떠올릴 법하다.

결국 저자가 하고픈 말은 이것이다. “우익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훨씬 더 폭이 넓다.”

‘사상계’를 중심으로 한 한국 현대 지성사로 읽어도 되고, 인물로 되짚는 한국 현대사나 한국 교회사로 읽어도 된다. 평소 흥미를 가진 인물이 있었다면 그 인물에 대한 간단한 평전으로도 손색없다. 국문학자인 저자는 곳곳에서 “역사학자도 아닌 내가…”라며 멈칫대지만, 그 덕에 읽어 내려가는 대중적 글맛은 오히려 더 낫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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