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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블루칼라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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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블루칼라의 시인

입력
2017.07.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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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가 이부록씨가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이에 영감을 받아 김현이 쓴 에세이 ‘촛불은 얼마나 단단한 물체인가’를 픽토그램(그림문자)으로 형상한 작품. 알마 제공
미술작가 이부록씨가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이에 영감을 받아 김현이 쓴 에세이 ‘촛불은 얼마나 단단한 물체인가’를 픽토그램(그림문자)으로 형상한 작품. 알마 제공

걱정 말고 다녀와

김현 지음ㆍ이부록 그림

알마 발행ㆍ228쪽ㆍ1만4,000원

이 책의 저자 김현씨는 2009년 문예잡지 ‘작가세계’로 등단해 2014년 시집 ‘글로리홀’을 냈다. 단편영화 ‘영화적인 삶 1/2’을 찍었고, 요즘은 출판사 창비에서 기획자로 일한다.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활동가로 지난해 문예지 ‘21세기 문학’에 한국문단의 여성혐오 실태를 고발한 기고 ‘질문 있습니다’를 발표해 파란을 일으켰다.

그가 쓴 두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에세이집이다. 이 땅 대부분의 문인이 그러하듯, 저자도 밥벌이와 연애, 가족과 친구를 밑천 삼아 글을 썼다. 비정규직을 전전했던 출판 노동자이자 “임대 보증금 2,387만원 월 임대료 20만 4,800원” 임대주택의 주인인 저자는, 그러나 ‘기승전-궁상’으로 끝을 맺었던 이 땅 대부분 문인들의 자기 고백을 재현하지 않는 기적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가령 이렇게.

‘얼마 전 한 원로 작가가 후배들을 앉혀놓고 어떻게 돈을 바라고 글을 쓸 수 있느냐고 쓴 소릴 했다고 전해 들었다. 송구스럽게도 나는 돈을 바라며 글을 쓰고 싶다 (...) 광장으로, 현장으로, 집으로, 사무실로 갈 때도 나는 온전히 예술가였고, 시인이었고, 노동자였다. 아마 하루 두 끼를 먹지 못했더라면 나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수습하며 사는 기쁨-자유로운 세계)

저 솔직하고 경제적인 문장을 이끄는 건 노동자, 빈민, 노숙자 등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았던 ‘블루칼라의 시인’ 켄 로치(81)다. 저자는 로치의 영화 속 캐릭터와 대사, 수상 소감, 1997년 국내 영화전문지 ‘키노’와의 인터뷰와 자신의 일상을 엮으며 ‘지금 여기’를 재현한다. 고된 얼굴로 잠든 청년을 응원하고,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엄마를 위로하며,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동료들과 싸우고, 퀴어 퍼레이드에서 행진하고,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규탄한다.

‘우리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언제나 생활이 앞장선다. 문학 하는 자라고 해서 뭐 특별히 다른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다른 생활을 해야만 문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인간의 됨됨이란 생활 속에서 성장하거나 퇴화한다는 것. 동그라미를 의미심장하게 쪼개어 적어 놓은 방학 계획표를 보면서 그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살아온 바를 후회하던 우리가 아닌가.’(문학은 이길 수 없다-제 69회 칸 영화제)

“켄 로치의 영화로부터 시작됐으나 그보다는 그의 말을 신뢰하는 글들로 채워졌다”고 자평한 이 책의 첫 머리에 저자는 감독의 입을 빌어 자신의 예술관을 밝힌다. ‘켄 로치는 말했다. 내용이 스타일을 결정해야 한다. 카메라와 스타일은 기록하는 대상과 사태보다 중요해져서는 안 된다.’

읽는 내내 ‘우리 시대 에세이를 찾았다’는 성취감이 밀려든다. 고향찾기, 추억팔이, 가난예찬, (프로이드식의) 아비 살해, 여성혐오와 ‘꼰대질’을 거부하는 저자의 자기 고백은 불특정 독자를 향해 서술된다. 잠언 한 줄 없이 오롯이 자신의 경험과 사유만으로 밀고 나가는 이 에세이집은, (외국어로 번역이 된다 해도) 비정규직과 다세대주택, 세월호와 촛불집회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한국의 독자만이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 터다.

시인, 그림 작가가 다른 예술가에게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엮은 ‘활자에 잠긴 시’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미술작가 이부록씨가 로치의 영화, 김현 에세이 속 주인공들을 픽토그램(그림문자)으로 만든 작품 30여편이 함께 실렸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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