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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사는 게 어때서요, 삶에서 확고한 취향이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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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사는 게 어때서요, 삶에서 확고한 취향이 중요해요"

입력
2018.03.20 15: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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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은 “배우 이솜이 주인공 미소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스럽게 소화했다”며 고마워했다. 고영권 기자
영화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은 “배우 이솜이 주인공 미소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스럽게 소화했다”며 고마워했다. 고영권 기자

자본주의 세계에서 값이 매겨진 모든 것은 위를 향한다. 월세, 밥값, 교통비, 대출 이자, 심지어 몸무게까지도. 오르지 않는 건 오직 (학생에겐)성적과 (직장인에겐)월급뿐. 그러니 포기해야 할 것들이 늘어만 간다. 취직을 포기하고,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포기한다. 먼지 한 톨까지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듯한 이 사회에서,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일까.

영화 ‘소공녀’(22일 개봉)의 주인공 미소(이솜)는 이 실존적 물음에 명쾌하게 답한다. “생각과 취향”이라고. 담배 한 모금과 위스키 한 잔, 남자친구 한솔(안재홍)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는 미소는 월세와 담뱃값이 한꺼번에 오르자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집을 버린다.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일당 4만5,000원을 버는 가난 속에서도, 취향이 확고하고 삶이 주체적이다.

19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마주한 전고운(33) 감독은 “2014년 담뱃값 2,000원 인상 소식에 물가 대비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다가 ‘소공녀’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소공녀’는 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가난한 흡연자에게 2,000원은 무척 큰 돈이에요. 그 정책을 만든 사람에겐 휴지조각보다 못한 돈이겠지만요. 그래, 어디 한번 물가를 계속 올려봐라, 나는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악에 받쳤던 것 같아요. 담배를 사랑하는 미소를 통해 부조리한 사회에 돌려차기를 하고 싶었달까요. 다만, 영화에선 유머와 위트로 포장을 했죠.”

왜 하필 담배와 위스키였을까. “평소 영화적 이미지로서 담배 피고 술 마시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었어요. 흡연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시선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고요. 고급스러운 위스키는 미소의 취향을 ‘에지’ 있게 드러내는 술이라고 생각했어요.”

집을 포기한 미소는 계란 한판을 사 들고 대학 시절 록밴드 동아리 친구들을 찾아가 하룻밤 잠을 청한다. 영화는 미소의 눈을 빌려 세상살이 풍경을 보여준다. 링거를 맞으며 일하는 친구, 시댁에서 구박받으며 사는 친구, 20년 상환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지만 이혼 당한 후배 등 저마다 삶은 퍽퍽하다. 부유한 친구는 미소에게 “염치”를 말하지만, 미소는 그런 친구들을 위해 따뜻한 밥 한끼를 지어 먹이고, 집을 반들반들하게 청소해 준다. 미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는 이런 것들이다. “사회가 정한 우선 순위대로 살지 않으면 비난이 돌아와요. 타인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남과 다르게 사는 게 뭐 어때서요.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예의 있게 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미소는 담배와 위스키를 사랑해서 집을 과감히 포기한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미소는 담배와 위스키를 사랑해서 집을 과감히 포기한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소공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대학원) 동창들이 꾸린 영화창작집단 광화문시네마의 네 번째 작품이다. ‘1999, 면회’(감독 김태곤), ‘족구왕’(감독 우문기), ‘범죄의 여왕’(감독 이요섭, 전 감독의 남편이다) 등 이전 작품 못지않은 독창성이 번뜩인다. 집단 안에서 처음으로 만장일치 받은 시나리오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독립영화이면서 여성영화이고, 20대 여자배우 주인공에, 연출은 여자감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여성영화가 많아지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요.”

광화문시네마는 ‘소공녀’를 끝으로 자신들이 정한 1기를 마감한다. 광화문시네마 작품은 아니지만 ‘돌연변이’의 권오광 감독까지, 광화문시네마 감독 5명이 모두 장편 데뷔했기 때문이다. ‘소공녀’에 예고영상으로 실린 차기작 ‘강시’부터 2기가 시작된다. 전 감독은 2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광화문시네마 이름은 알렸지만 제작지원 받지 않으면 여전히 영화를 만들기 어려워요. 조금 지치기도 했죠. 2기는 어떻게 될지 저희도 몰라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같이 술 마시고, 고민 들어 주고, 서로 투닥거리면서 영화 만들고 있지 않을까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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