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억할 오늘]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1.29)

입력
2018.01.29 04:40
30면
0 0
4대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661년 오늘 암살 당했고, 수니파와 시아파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다.
4대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661년 오늘 암살 당했고, 수니파와 시아파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다.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은 예언자 무함마드(570~632)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급사하면서 이슬람 공동체의 후계자 선정 문제를 두고 촉발됐지만, 돌이킬 수 없는 갈등으로 비화한 것은 4대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Ali Ibn Abi Talib, 이하 ‘알리’, 656~661 재임)가 암살되면서부터였다. 알리가 661년 1월 29일, ‘칼리프제도’ 자체에 반감을 품은 일파에 의해 살해 당했다.

610년 대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고 4년 뒤 세상으로 나와 전도를 시작한 무함마드는 메카의 집권자들의 탄압을 받자 622년 신자들과 함께 메디나로 이주(헤지라, 이슬람력 원년)했다가 군대를 키워 630년 메카를 정복한다. 적극적 포교에 나선 지 불과 2년 만에 그는 식중독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숨졌다. 그에겐 15년 연상의 아내 카디자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었다. 혈족이라고는 유년의 무함마드를 키운 삼촌 아부 탈리브의 아들인 사촌 알리가 유일했고, 더욱이 알리는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 결혼한 사위이기도 했다.

무함마드에 이어 이슬람공동체 ‘움마’를 이끌 최고 지도자 ‘칼리프’는 마땅히 무함마드의 혈족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은 알리를 초대 칼리프로 추대했다. 그들은 ‘시아투 알리’(알리의 파)라 불렸고, 시아파의 원조였다. 반면, 칼리파는 움마 지도부가 협의를 통해 역량과 무함마드의 덕성을 고루 갖춘 적임자를 뽑아 추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아랍어 ‘순나’(예언자의 모범)에서 따온 ‘수니’가 그들이었다. 압도적 다수였던 수니파의 뜻에 따라 무함마드의 친구이자 장인인 아부 바크르가 초대 칼리프(632~634)가 됐고, 이후 24년 동안 3명의 칼리파가 탄생했다.

시아파에 대한 차별은 있었지만 그래도 한솥밥을 먹던 양 파벌은 3대 칼리프 우스만 이븐 아판의 암살 후 알리를 4대 칼리프로 추대했고, 갈등의 앙금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시아파에게 알리는 유일한 칼리프이자 첫 이맘(통솔자)이었고, 이전 3대는 자격 없는 찬탈자에 불과했다. 그런 알리가 재위 5년 만에 암살 당한 거였다. 알리 사후 장남마저 수니파의 사주를 받은 아내에게 독살 당했고, 차남 역시 수니파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로써 알리의 혈통,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이 끊겼고, 시아파와 수니파를 묶고 있던 실낱 같은 봉합의 끈도 함께 끊겼다. 정통 칼리프 시대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