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지평선] 개성공단

입력
2016.02.15 20:00
0 0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ㆍ7 선언’으로 남북 간 교역의 물꼬를 텄지만, 남북경협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이다. 1998년 6월 당시 83세였던 정 회장은 소 500마리를 직접 끌고 북한으로 넘어갔다. 소를 가득 실은 수십 대의 트럭이 하루 전 개통된 통일대교를 줄지어 건너 북한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CNN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된 소떼 방북을 본 세계적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고 했다.

▦ 4개월 뒤 501마리의 소를 끌고 2차 소떼 방북에 나선 정 회장은 “이제 그 한 마리가 천 마리의 소가 돼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간다”고 감격해 했다. 17살 때 고향인 강원도 이북에서 부친이 소를 팔아 마련한 70원을 훔쳐 들고 상경한 것에 대한 회한이다. 이듬해 개성공단 건설 합의가 이뤄진 것은 두 번에 걸친 소떼 방북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공단의 운명은 순탄치 못했다. 금강산관광 중단, 북한 핵실험 등 숱한 정치적 명분 싸움의 도구로 전락했고, 2013년에는 한미 군사훈련 문제로 5개월 넘게 폐쇄됐다.

▦ 이스라엘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미국은 이스라엘 이외 특정지역에서 생산한 제품도 이스라엘 산(産)으로 인정하는 관세특혜를 적용했다. QIZ(Qualified Industrial Zones)라고 하는 역외가공지역이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등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 대상이다.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은 요르단, 이집트에 대한 일종의 경제 보상이다. 역외가공지역이라는 경협을 통해 지역안보의 안정을 꾀한 모범사례다. 그러나 미국은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북한의 노동환경 등을 문제 삼아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을 한사코 거부했다.

▦ 우리가 한미 FTA 협상에서 개성공단의 원산지 인정을 미국에 요구한 것은 개성공단의 발전 자체가 한반도 긴장을 완화에 기여하는 정치적 효과 때문이다. 북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이 북한 지도부의 체제유지를 위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 학습비용이라는 논리를 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랬던 우리가 개성공단을 폐쇄하면서 “공단에서 지급된 달러가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에 전용됐다”고 말을 바꿨다. 경협 옥동자가 안보 지킴이에서 안보 희생자로 좌초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