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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조공외교(朝貢外交)의 교훈

입력
2017.12.20 13:4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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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전 중국과 주위 국가는 이른바 조공책봉(朝貢冊封) 관계로 얽혀 있었다. 주위 국가가 중국에 사절을 파견해 문안(問安)하고 예물을 바치는 의례가 조공, 중국이 주위 국가의 왕권을 승인하고 회사(回賜)하는 절차가 책봉이었다. 중국 주(周) 시대 천자와 제후 사이의 관행이 한(漢) 이후 중국과 주위 국가로 확대되어 청(淸)대에 전형을 이뤘다. 이른바 화이질서(華夷秩序)라는 국제관계가 성립된 셈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천하의 중심으로서 권위를 높이고 주위 국가와 안정관계를 유지한 반면, 주위 국가는 중국의 보장 아래 나라를 보전하고 선진문명을 받아들였다.

조공과 책봉은 국가 간의 상하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에, 이것을 확대 해석하면 중국을 종주국(宗主國), 주위 국가를 번속국(藩屬國)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중국은 가끔 책봉 등을 꼬투리 잡아 주위 국가를 길들였고, 주위 국가는 중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그렇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중국이 주위 국가의 내정과 외교에 직접 간섭하지는 않았다. 조공과 책봉을 실행한 것은 양국이 파견한 사신이었다.

너그럽게 보면, 조공과 책봉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믿음(信)으로 섬기고(事大),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어짊(仁)으로 보듬음으로써(字小), 대소열국(大小列國)이 상호결속과 평화공존을 도모한 외교행위였다. 사대자소를 체현한 화이질서는 중국과 주위 국가에 서로 이익이 되었기 때문에 오랜 동안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로 기능했다. 다만 작동의 강도는 양국의 세력부침, 상호관계, 국제정세 등에 따라 달랐다.

조선과 청은 요충 지역 가까이서 국경을 접했기 때문에 화이질서의 자기(磁氣)가 가장 거셌다. 조선은 매년 3,4회나 청에 사신을 보냈고, 청은 조선에 3품 이상의 기인((旗人, 만주족 군인귀족관료)을 칙사로 보냈다. 반면에 월남은 10년에 1회 정도 청에 사신을 보냈고, 청은 월남에 5품 이하의 기인이나 한인(漢人)을 칙사로 보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청과 멀리 떨어진 일본은 화이질서에서 벗어나 사신왕래도 없었다. 이런 차이가 근대 이후 각 나라의 국제지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대자소의 화이질서는 근대 이후 만국공법에 기초한 조약체제와 충돌했다. 조선은 청을 상국으로 섬기며 열강과 평등하게 교류하려고 애썼지만, 열강의 가혹한 침략에 시달린 중국은 거꾸로 조선을 번속국으로 묶어두려고 강하게 압박했다. 유길준(俞吉濬)은 조선이 조공체제도 조약체제도 아닌 어정쩡한 국제지위에 놓인 상황을 양절체제(兩截體制)라고 규정했다.

양절체제는 변화하는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에 화근이 되었다. 조선에 세력을 뻗치려는 열강, 특히 일본은 청의 간섭을 물리치는 데 골몰했다. 그 일환으로 조일수호조규(1876년)와 청일강화조약(1895년)의 제1조에 ‘조선은 완전 독립국이다’는 문구를 일부러 명기했다. 결국 조선은 자력으로 화이질서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청이 일본에 패할 때까지 조공외교를 계속했다. 그리고 국체를 대한제국으로 높인 후 반식민지로 전락한 청과 ‘대한국대청국통상조약’(1899년)을 맺어 평등한 국가관계를 수립했다. 그렇지만 동아시아의 세력전이(勢力轉移) 속에서 제 힘으로 화이질서를 극복하지 못한 업보는 참혹해서 나라마저 일본에 빼앗겼다.

해방 후 50년 동안 한국은 화이질서와 완전히 결별하여 자유, 민주, 인권, 평등, 풍요가 넘치는 국가를 건설했다. 그런데도 요즈음 한국의 중국외교를 보면 스스로 중국의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인상을 준다. 마치 조공외교가 부활한 것 같다. 역사에 대한 무지와 국가에 대한 불충이 이보다 더 심할 수는 없다. 중국은 지금 국가주석까지 나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역사를 날조하며, 화이질서의 복원을 꾀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 한국이 번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오만무도한 중국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국망의 치욕이 체통을 지키라고 촉구하고, 성취의 경험이 자강에 매진하라고 격려하지 않는가!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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