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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천천히 깊게 느리게.

입력
2016.03.2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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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지 어느새 20여 년이 훌쩍 넘어 서 있다. 선배들의 농 섞인 꾸지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만하면 한번쯤 세월이라 불러보고 싶기도 하다. 언제나 주변에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모두 관통하는 나의 일관된 주제의식은 ‘사람과 삶’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걸음을 돌아보면 늘 양가적 감정이 든다. 마주해온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고통이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았던 탓에 기억을 살피려다 괜한 상념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제대로 보탬이 되지 못한 나를 자책하곤 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꿨던 젊은(?) 시절에는 더욱 그랬다. 반대로 춘삼월 다 보내고 봄바람이라도 난 강아지 마냥 들뜬 기분이 들 때도 꽤 있다. 소중한 인연들에게 받은 감동의 순간들을 기억해 보면서 절로 웃음이 날 만한 일들 또한 적지 않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인연이라 할 만한 사람들 전부 첫 만남이라는 순간을 당연하게 치러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예외 없이 적용하는 한 가지 일관된 원칙이 있었다. 사진작업을 하게 될 경우 가급적 ‘천천히’ 바라보고, ‘깊게’ 공감하면서, ‘느리게’ 셔터를 누른다는 것이다. 사진이미지의 완결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사진행위 자체에 더 많은 관심과 공을 들이게 된 지금도 이 원칙을 지키는 것에 여전히 변함이 없다. 어찌 보면 완성품으로서의 사진의 작품성보다는 대상과의 진행 과정 안에서 겪게 되는 감흥들에 훨씬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사진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주된 대상인 ‘사람과 삶’을, 내 자의적 해석으로 대상화 시키지 않기 위해 필수적으로 수행해 온 나름의 개똥철학이자 하나의 신념이기도 하다.

감정이입의 형식을 가진 나만의 사진 작업 방법은 이렇다. 먼저 사진에 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멀리서가 아닌 그 사람 앞에 다가가 선다. 웃음이 깃든 말과 행동으로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하면서도 의식의 눈으로 꾸준히 상대를 바라본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적당히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되면 이내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간다. ‘그’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 이제 타자가 된 원래의 나를 본다. 그가 된 내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낯선 이방인을 살피는 것이다. 나를 사진 찍으려 하는 그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보다 나를 어떻게 찍으려는 것인지도 실제 궁금해 한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시 적절한 때가 되면 본래의 내 자신 안으로 의식을 이동시킨다. 그리고 처음의 그 사람을 다시 바라본다. 이때가 되면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똑같은 그 사람이 처음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본 상태이기에 ‘그’와 ‘나’라는 이등분은 없어지고, 혹시나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를 편견이나 무지에서 비롯된 경계와 구분의 시선도 떨쳐내게 되는 것이다. 혹여 그 사람이 빈곤이나 장애, 피부색 따위의 편견을 일으킬 만한 사회적 기제들에 갇힌 이들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대상화’된 수단으로 사람을 보게 되는 오류를 범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그때가 되면 이제 손가락에 힘줄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서로에 대한 앎의 시간들이 쌓인 이후에야 카메라를 내세울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러한 원칙은 어느덧 사진하는 사람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세우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진기자, 사진작가, NGO 활동가 등등으로 불리던 나는, 여전히 사람과 삶을 살피는 일을 하기 위해 생활의 무게중심을 사진심리상담사로 크게 옮겨가는 중이다. 일주일이 겨우 반나절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못할 만큼 빽빽한 일상을 보내는 이유도 부족한 면들을 채우기 위한 시간들이 많은 탓이기도 하다.

3월의 마지막 날 즈음이 되어서야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봄이다. 생동하는 만물의 기운들 틈에서 나도 다시 힘을 내어본다.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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