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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모두 외면한 독립운동가, 이렇게 잊혀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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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모두 외면한 독립운동가, 이렇게 잊혀서야

입력
2015.1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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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한국 현대사

안재성 지음

인문서원ㆍ396쪽ㆍ1만7,000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다들 잊혀지겠죠?”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이 조국 독립 소식을 듣고 임시정부 주석 김구와 술잔을 나누며 한 말은, 실제 그의 운명을 가리키고 있다. 1919년 22세 때 의열단을 창설하고 26년간 줄기차게 무장투쟁을 벌였던 그는 해방 이후 남한에선 공산주의자로, 북한에선 반혁명 종파주의자로 배척당해 역사에서 사라졌다.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중국 내 항일운동 부분에서 그를 의열단과 조선의용대의 대표자, 1935년 민족혁명당을 결성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해 독립운동가들의 좌ㆍ우 합작을 시도한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김원봉은 ‘잃어버린 한국 현대사’에 소개되는 독립운동가 19명 중 가장 유명한 축에 든다. 나머지는 한국의 근ㆍ현대사에 조예가 깊지 않은 한 이름조차 생소하다. 남북한 양쪽에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인물들이다. 김일성이 소련을 등에 업고 권좌에 오르기 전까지 공산주의 진영의 대표 정치인이었던 박헌영, 조선 순종의 장례식 때 3ㆍ1 만세운동의 재현을 노리고 일어난 6ㆍ10 만세운동의 주동자 홍남표와 홍덕유, 뛰어난 전술로 중국 공산당의 신임을 받았던 장군 김무정 등.

잊혀진 독립운동가 가운데 “여성해방의 길은 오로지 사회주의 사회 건설로만 이뤄진다”고 믿었던 여성 사회주의자들도 있다. 김명시는 7년간 신의주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고 중국 공산당에 입당해 중국 팔로군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여, ‘백마 탄 여장군’이라는 경외 어린 별명을 받았다. 기생 출신의 지식인 정칠성은 여성의 정치적ㆍ경제적 자유뿐 아니라 연애와 성 관념의 자유화를 주장해 남성 문필가들의 비난도 받았다.

이들 대부분은 해방 직후의 혼란 속에 사망하거나, 미 군정과 우익 진영의 탄압을 받고 월북했다 김일성의 유일 체제 수립 과정에서 반혁명분자로 몰려 최후를 맞았다. 저자는 이들의 삶을 특별히 영웅시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저 평생을 항일투쟁에 바치다 두 개의 한국에 배신당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이들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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