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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채용 비리, 문제는 패거리 문화에 있다

입력
2018.02.13 11: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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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비리는 취업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은 물론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채용비리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의 일부로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각종 청탁 관행의 한 부분이며, 그 청탁문화 뒤에는 더 심각한 패거리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공공기관들은 엄격한 채용규정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무처리는 내부 감사는 물론 감사원 등 외부 기관의 감사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특별점검 결과 1,190개 대상기관 중 80%에 해당하는 946개 기관에서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는 사실은 채용 청탁에 대한 국민들의 막연한 예상을 크게 뛰어 넘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청탁의 범위가 채용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의 기관장이나 임원에 채용 청탁을 할 수 있는 힘이라면, 그 힘은 채용만 아니라 승진과 전보 등 인사 전반에 미쳤을 것이라고 보더라도 결코 지나친 억측이 아닐 것이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청탁의 범위가 인사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각종 공공기관 비리의 상당 부분은 청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웬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치고 청탁을 해 본 적이 없거나 받아 본 적은 없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라고 할 만 하다. 청탁에 관한 한 '미 투(me too)'는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소위 힘 있는 기관의 사람들일수록 청탁 요구를 많이 받는 한편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스스로도 청탁을 행사한다.

부당한 청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구조적 이유가 있다. 청탁을 받은 기관장 자신도 청탁으로 그 자리를 얻었거나, 같은 패거리이기 때문에 청탁을 거절하기 어렵다. 청탁을 거절하는 것은 소위 법보다 더 무섭다는 ‘괘씸죄’를 짓는 것이고, 그 결과로 ‘두고 보자’ 식의 보복 위협에 떨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외국 언론들은 위기의 원인으로 ‘패거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를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채용 비리는 지난 20년 간 우리 사회가 패거리 자본주의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혈연ㆍ지연ㆍ학연보다 훨씬 더 심각한 패거리는 정권에서 나온다. 소위 ‘TK’와 ‘PK’는 물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무슨 회’가 대표적 권력 패거리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소위 ‘캠프’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 중에는 집권 패거리의 일원이 되어서 인사를 비롯한 갖가지 집권의 과실과 이득을 나누는 데 한몫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음도 사실이다.

패거리 문화는 채용을 비롯한 각종 비리의 온상일 뿐만 아니라 패거리끼리 인사와 정보와 예산을 독점하고 경쟁과 혁신을 차단해 경제생태계의 물을 기득권으로 더럽힌다. 그 결과 패거리 문화는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의 확립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어렵게 하는 그야말로 ‘적폐’다.

촛불의 대의를 내세워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정권 차원에서 패거리 문화의 적폐를 청산해야 마땅하다. 검찰은 담당자만 처벌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청탁 압력을 행사한 외부의 힘 있는 ‘몸통’을 찾아서 처벌해야 청탁 문화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 나아가 청와대의 인사부터 패거리 낙하산이 아니라 적합하고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의해 인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패거리 문화가 상존하는 한 채용 비리는 근절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패거리’의 정권이 아니라 진정한 국민의 정부임을 인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패거리 문화를 청산함으로써 대한민국이 패거리 자본주의로부터 탈피하는 기틀을 세우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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