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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간도 아닌 자의 먹이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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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간도 아닌 자의 먹이사슬

입력
2016.12.1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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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소설집 ‘아무도 아닌’ 펴낸 황정은 소설가. 인간이지만 인간임을 허용 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여덟 편이 실렸다. 이천희 제공
세 번째 소설집 ‘아무도 아닌’ 펴낸 황정은 소설가. 인간이지만 인간임을 허용 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여덟 편이 실렸다. 이천희 제공

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문학동네 발행ㆍ216쪽ㆍ1만2,000원

자존감. 이 단어가 대중 심리학과 인문학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쓰인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유사품으로 진정성과 공감이 있다. 자존감은 스스로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뜻한다. 공기처럼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자존감은 우리가 인간임을 기억하게 해주고 어떤 형편에서든 존중 받아야 한다고 외치게 해주는 단어다.

그러나 동시에 ‘출생의 비밀’이 의심스러운 말이기도 하다. 방어하기 전에 안 때리면 되지 않았을까. 생존을 위해 자존감을 ‘공부’하는 이는 늘 약자이며, 강자는 그들의 외침이 자기 자리를 뒤흔들 때까지 팔짱 끼고 버틴다. ‘넌 너무 자존감이 없어’는 ‘그러니까 당하고 사는 거야’와 겹쳐서 발화되고, 애초에 누굴 위해 태어난 단어인지 의심이 드는 것이다.

“사람이 날 때부터 존귀하다면 그것을 스스로 알아채게 되는 때는 언제일까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학습되는 것입니까? 스스로 귀하다는 것은… 자존, 존귀, 귀하다는 것은, 존, 그것은 존, 존나 귀하다는 의미입니까. 내가 존귀합니까. 나는 그냥 있었는데요”

황정은 작가의 단편 ‘복경’의 주인공은 백화점 침구매장의 판매사원이다. 최근 나온 소설집 ‘아무도 아닌’의 마지막에 실린 작품이다. 일인칭 독백으로 전개되는 소설에서 주인공은 “웃고 싶지 않은데 웃는” 증상을 호소한다.

주인공의 삶은 ‘헬조선의 을’의 전형이다. 편모 가정에서 자란 그는 뒤통수가 납작한 조용한 아이였다. 너무 조용한 나머지 엄마가 머리 돌려주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정갈했던 어머니가 오줌을 흘리며 죽어갈 때 진통제조차 처방해주지 못한 그는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그의 성토 대상은 의외로 고객이 아닌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다. 고객과는 애초에 인격적 관계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뜸 매장에 들어와 주차료 정산에 쓸 영수증을 끊어달라는 고객은 잠시 후 전화를 걸어와 화장실에 가방을 두고 왔으니 주차장으로 가지고 오라고 한다. 이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다.

“특별하게 지독한 경우엔 공손하게 모은 손으로 아랫배를 꾹 누른 뒤 내가 방금 스위치를 눌렀다고 생각합니다. 그 간단한 조치로 뭔가, 인간 아닌 것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뭔지 모르게 인간 아닌 것이 소리를 내고 있다, 라고 생각해야 흉측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웃으며 제대로 서 있을 수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매니저는 영업의 신이다. 매출을 잔뜩 올린 뒤 인근 지하상가로 가 그곳 직원을 쥐 잡듯 잡는 게 취미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 매니저는 “도게자라고 알아, 자기?”라고 반문한다. 도게자는 일본어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사과하는 자세를 뜻한다.

“이걸 사과하는 자세라고 알고 있지만 이것은 사과하는 자세가 아니야. (…)꿇으라면 꿇는 존재가 있는 세계. 압도적인 우위로 인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경험. 모두가 이것을 바라니까 이것은 필요해 모두에게. 그러니까 나한테도 필요해. 그게 왜 나빠?” 말인즉슨, 매니저는 ‘자존감’을 회복한 것이다. 그리곤 덧붙인다. “나는 무시 당하는 쪽도 나쁘다고 생각해.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을 귀하게 여겨야지.”

누군가 인간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는 인간 아닌 무엇이 돼야 한다. 이 먹이사슬의 최하층에겐 ‘자존’하지 못한 책임이 부여된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자존하고 있습니까 제대로…. 존귀합니까. 존나 귀합니까… 누구에게 그것을 배웠습니까.”

황정은은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 사회의 폭력에 집요하게 반응해온 작가다. 그러나 과거 뒤통수가 납작한 아이처럼 담담하게 삶을 관찰해왔던 그는 이번 소설집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를 낸다. 초점 잃은 독백, 찢어지는 비명에 독자는 읽다가 책을 한 번 덮어야 할지도 모른다. 임계점을 훌쩍 넘은 사회가 전략적 침묵과 우회적인 유머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일까. 이제 유효한 건 귀를 찢는 고성뿐이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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