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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거장 카푸어 “단순할수록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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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거장 카푸어 “단순할수록 더 깊다”

입력
2016.09.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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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의 한국 개인전

깊이 가늠 어려운 검은 디스크

비틀린 금속 기둥 등 비정형 탐구

“물성 뒤틀며 변화 이끌어 내

보이는 것만큼 직관적이지 않아”

인도 출신 세계적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가 지난 달 31일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트위스트' 앞에 섰다. 고영권 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인도 출신 세계적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가 지난 달 31일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트위스트' 앞에 섰다. 고영권 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작품에 많은 시도들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때론 단순함이 더 깊은 의미를 담아 내는 것 같습니다.”

국내 네 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방한한 인도 출신의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62)는 지난 달 31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단순함’에 대한 시각 변화를 이끌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카푸어는 10월 30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근작 19점을 소개하는 개인전 ‘군집된 구름들(Gathering Clouds)’을 연다. 2003년, 2008년에 이은 국제갤러리 세 번째 개인전이자 2012년 삼성리움미술관에서 가진 대규모 회고전 이후 4년 만의 한국 전시다. 신작 ‘트위스트’ 15점과 전시제목과 동명인 ‘군집된 구름들’ 4점으로 구성됐다.

'비정형(Non-object)'를 탐구한 신작 '트위스트' 시리즈. 높이 2.5m의 작품 3점은 전시장 바닥에, 60cm 높이의 작품 12점은 선반 위에 놓여져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비정형(Non-object)'를 탐구한 신작 '트위스트' 시리즈. 높이 2.5m의 작품 3점은 전시장 바닥에, 60cm 높이의 작품 12점은 선반 위에 놓여져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카푸어는 작품이 갖는 의미나 사회적 영향력에는 큰 관심이 없다. 오래 전부터 일상적으로 해왔다는 명상 또한 작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설명한다. 그는 “물체에 적용된 힘이 절제된 형태의 움직임으로 어떻게 전환되는 지에만 집중한다”며 조각 작업을 통해 “오브제가 갖고 있는 ‘영적인 성질’을 실현하려 한다”고 말했다.

물질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그가 수 년에 걸쳐 탐구하고 있는 주제는 ‘비정형(Non-object)’이다. 작품은 단순해 보이지만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 유리섬유로 조각된 벽걸이 형태의 디스크 작업인 ‘군집된 구름들’은 검은 안료로 칠해져 오목한 표면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트위스트’ 또한 단순한 해석에 저항한다. 극도로 매끄러운 표면의 스테인리스 덩어리는 불특정 각도로 뒤틀려 있어 반사와 왜곡이 동시에 나타난다. 관람객은 마치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의 작품은 이처럼 해석이 모호하기 때문에 오히려 관람객의 몰입과 자발적 탐험을 유도한다. “한눈에 보이는 것만큼 단순하거나 직관적이지는 않을 겁니다. 표면과 트위스트가 어우러져 매우 다각적인 차원을 느끼게 하죠. 물성을 뒤틀었을 때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작업합니다.”

비정형에 대한 탐구는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성질과도 맥을 같이 한다. “예술은 물성(物性)과 비물성(非物性)의 관계에서 만들어집니다. 찰흙으로 도자기 하나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죠. 찰흙은 손에 잡히는 것이지만, 찰흙으로 만든 도자기는 전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인 어떤 것을 의미할 수도 있죠.”

작품 제작에는 보통 3, 4개월이 걸린다. 그러나 제작을 마친 작품이 곧 완성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만들고 바로 (작업실 밖으로)내보내지는 않아요. 6개월 정도 두고 지켜보죠. 숙성시킨다고 해야 할까요? 그 기간 동안 ‘잘 만들어진 게 확실한가? ‘내가 이걸 왜 만들었지?’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집니다.” 카푸어는 “작업은 지켜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며 “(그 과정에서)세상에 못 나오는 작품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의 스튜디오는 ‘실험실’에 가깝다. 매일 오전 9시 작업실에 출근해 오후 7시 퇴근하는 “규칙적인 사람”이지만, 작업 자체를 규칙이나 일정에 맞춰 하지는 않는다. “‘오늘은 어떤 오브제를 택해야겠다’는 식으로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다가 ‘이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작업에 돌입하는 거죠. 작업에 해답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탐구하고 탐구할 뿐이에요.”

영국의 한 기업이 만들어내 카푸어가 예술적 사용 권한을 독점하면서 논란이 된 반타블랙(VantaBlack)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반타블랙은 빛을 99.96% 흡수할 수 있어 ‘세상에서 가장 검은 색’으로 알려져 있다. 카푸어는 “반타블랙은 너무나도 까맣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며 “신비롭고 초월적이기 때문에 ‘비정형’ 탐구에 매우 적합한 재료”라고 애정을 표시했다. 여전히 “활용 방법을 고민 중”이라는 그는 “대략 30㎡ 정도의 (대형)작품에 사용하고 싶지만 (그때까지)아마 몇 년은 걸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카푸어는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지만 “예술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ㆍ의무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대다수 예술가들은 스스로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들도 일개 인간에 불과합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건 예술가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중요한 거죠.”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카푸어는 1973년 영국으로 이주, 혼지예술대와 런던 첼시대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 대표 작가로 참여해 뛰어난 신인에게 주는 ‘프리미오 듀밀라(Premio Duemila)’상을, 이듬해 영국의 권위 있는 예술상인 ‘터너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군집된 구름들' 설치 전경. 검은 안료로 칠해 오목한 표면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국제갤러리 제공
'군집된 구름들' 설치 전경. 검은 안료로 칠해 오목한 표면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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