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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메달 다섯개나… 몸싸움 없는 스피드 해보고 싶었죠”

입력
2018.02.21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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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 첫 두 종목 도전 스피드스케이팅 박승희

쇼트트랙 전종목 메달 신화

“병상의 노진규 격려가 큰 힘”

쇼트트랙으로 두 번, 스피드스케이팅으로 한 번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박승희. 그가 지난 18일 자신의 올림픽 마지막 무대였던 강릉 오벌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승희는 스케이트 타는 수호랑을 든 채 환하게 웃었다. 강릉=김주영 기자
쇼트트랙으로 두 번, 스피드스케이팅으로 한 번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박승희. 그가 지난 18일 자신의 올림픽 마지막 무대였던 강릉 오벌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승희는 스케이트 타는 수호랑을 든 채 환하게 웃었다. 강릉=김주영 기자

“너무 귀여워요.”

스케이트 타는 수호랑을 본 박승희(26ㆍ스포츠토토)가 ‘꺅’ 소리를 질렀다. 수호랑의 미소와 그의 생글생글한 웃음이 꼭 닮았다.

박승희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동메달 2개(1,000mㆍ1,500m), 2014년 소치 대회에서 금메달 2개(1,000mㆍ계주)와 동메달 1개(500m)를 목에 걸었다. 올림픽 쇼트트랙 전 종목에서 메달을 딴 최초의 여자 선수다. 그는 소치올림픽 직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꿔 3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고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권까지 거머쥐었다. 박승희는 지난 14일 올림픽 피날레 무대였던 평창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 출전했다. 16위로 메달권에는 못들었지만 관중들은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한국 빙상 최초로 올림픽 두 종목 출전이라는 도전에 성공한 박승희를 지난 18일 강릉 오벌에서 만났다.

박승희의 환한 미소. 강릉=김주영 기자
박승희의 환한 미소. 강릉=김주영 기자

쇼트트랙(111.12m)과 스피드스케이팅(400m)의 가장 큰 차이는 트랙 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박승희는 “둘은 빙판 위에서 한다는 것 빼고 완전히 다른 종목”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쇼트트랙은 상대를 이용해 순위를 올리는 묘미가 있지만 스피드는 체력과 기술로만 승부한다는 게 박승희의 설명. “스피드 훈련이 훨씬 힘들다”는 박승희는 스피드스케이팅을 시작한 뒤 체중이 5~6㎏ 늘고 허벅지도 눈에 띄게 굵어졌다.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는 “한 번은 마음먹고 살을 뺐더니 스케이트가 타지질 않았다. 다이어트는 올림픽 뒤로 아예 포기했다”고 털어 놓았다.

2014년 소치올림픽 당시 500m에서 1위를 달리다 넘어져 동메달을 딴 뒤 눈물을 흘리는 박승희. 소치=연합뉴스
2014년 소치올림픽 당시 500m에서 1위를 달리다 넘어져 동메달을 딴 뒤 눈물을 흘리는 박승희. 소치=연합뉴스

‘박승희’하면 소치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500m 결승이 떠오른다. 1등으로 달리던 그는 무리하게 파고든 엘리스 크리스티(28ㆍ영국)에 밀려 미끄러졌다. 곧바로 일어났지만 또 얼음에 걸려 넘어졌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4위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크리스티가 실격돼 동메달을 차지했다. ‘아름다운 투혼의 레이스’로 기억되지만, 사실 이 경기는 그가 종목을 바꾼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올림픽 금메달이 없는 500m 징크스를 깨려고 4년 간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좋은 결과가 눈앞에 있었는데 다른 선수 때문에 순식간에 물거품 됐으니까요. 물론 동메달도 값지지만 쇼트트랙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더라고요.”

노진규의 생일날 박승희가 그를 추억하며 올린 사진.박승희 인스타그램
노진규의 생일날 박승희가 그를 추억하며 올린 사진.박승희 인스타그램

쭉 쇼트트랙을 했다면 고국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승희는 “집에 메달이 5개나 있어서 괜찮다”면서도 마음에 걸리는 일을 털어놨다. 고(故) 노진규다. 남자 쇼트트랙 기대주였던 노진규는 악성 종양으로 투병하던 끝에 2016년 4월 눈을 감았다. 1992년생으로 동갑인 박승희와 노진규는 어린 시절 과천에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 각별한 사이다.

박승희는 종목을 바꾼 직후 “성적도 안 나는데 스피드를 왜 하느냐”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라”는 주변 사람들 말에 많이 괴로웠다고 되돌아봤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병상의 노진규가 ‘걱정 마. 너는 스피드에서도 잘 해낼 거야’라고 격려 문자를 보냈다. 박승희가 곁눈질하지 않고 스피드 스케이팅에 매진하게 된 계기다. “진규가 원래 저한테 정말 장난을 많이 쳤거든요. 그 날은 장문의 문자로 응원해줘서 정말 큰 힘이 됐어요. 평창에서 혹시나 메달을 따면 진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는데...”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박승희는 선수 은퇴 후 이쪽 분야에서 일할 계획이다. 박승희 인스타그램 캡처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박승희는 선수 은퇴 후 이쪽 분야에서 일할 계획이다. 박승희 인스타그램 캡처

평창올림픽을 끝으로 스케이트화를 벗을 예정인 박승희의 향후 계획은 패션 분야다. 관심이 많아 평소 패션 행사도 틈틈이 다녔고 몇몇 디자이너와 친분도 있다. 수강권을 끊었지만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가지 못했던 디자인 학원도 본격적으로 다니며 스케이트 선수 이후의 ‘인생 2막’을 준비할 계획이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중 어떤 선수로 기억에 남으면 좋을까. “당연히 둘 다죠. 무모한 도전을 멋지게 해낸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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