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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119’ 고지운 변호사 “그들에게 ‘미투’는 사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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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119’ 고지운 변호사 “그들에게 ‘미투’는 사치죠”

입력
2018.07.17 17:28
수정
2018.07.1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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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떠오른 난민문제 못지 않게 

 이주민 학대ㆍ폭력 갈수록 심각 

 운영은 개인 후원 등에 의존 ‘열악’ 

고지운 이주민 무료 지원 공익법인 ‘감사와 동행’ 대표 변호사는 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 사무실에서 만나 “이주민들에 대한 학대와 폭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고지운 이주민 무료 지원 공익법인 ‘감사와 동행’ 대표 변호사는 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 사무실에서 만나 “이주민들에 대한 학대와 폭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호출이 오면 그냥 뛰어 나가야죠.”

이쯤 되면 일중독(워크홀릭)이다. 평일이나 휴일 구분 없이 산 지도 오래됐다. 그 만큼 일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가족 등 지인들의 만류에도 고집을 꺾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다른 피부색 때문에 한국에서 무시당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게 전부였다. 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 4층 사무실에서 만난 고지운(40) 이주민 무료 지원 공익법인 ‘감사와 동행’ 대표 변호사는 “한국인들에게 일방적으로 피해만 보는 이주민들의 고통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며 법인 설립 동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지난 2014년3월 문을 연 ‘감사와 동행’은 상근변호사를 둔 국내 첫 이주민 전문 공익 법인이다. 고 변호사는 약 9.92㎡(3평) 공간에 마련된 이 곳에서 상근변호사 2명, 실무관 1명과 함께 주로 외국에서 건너온 이주 아동이나 여성, 노동자들은 물론 난민 등에 대한 무료 법률 지원을 맡고 있다. 그는 최근 사회적인 쟁점으로 부각된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 못지 않게 이주민들의 피해 또한 심각하다고 대변했다. “이주민들에게 ‘미투’는 사치입니다. 미투는 고사하고 갈수록 심해지는 학대와 폭력으로 이주민들의 고통은 더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고 변호사의 스마트폰에선 이주민들의 도움 요청 메시지를 알리는 진동음이 연신 울려댔다.

고지운(맨 왼쪽에서 두 번째) ‘감사와 동행’ 대표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주민들에 대한 ‘행정구금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심포지엄’에 참가, 이주민들에 대한 실상을 소개하고 있다. 감사와 동행 제공 감사와 동행 제공
고지운(맨 왼쪽에서 두 번째) ‘감사와 동행’ 대표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주민들에 대한 ‘행정구금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심포지엄’에 참가, 이주민들에 대한 실상을 소개하고 있다. 감사와 동행 제공 감사와 동행 제공

 우연한 기회에 이주민 전문 변호인으로…도 넘은 이주민 학대, 갈수록 심해 

당초 법학도가 꿈이었던 고 변호사의 인생 항로는 우연히 정해졌다.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1997년)한 그는 또래 친구들처럼 사법고시에 응시했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실패를 맛본 그가 일반대학원에서 법철학 과정에 들어서려던 순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생겼고 이화여대 1기생으로 ‘제1회 변호사 시험’(2012년3월)을 통과했다. 이주민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변호사 실무 수습으로 일하던 도중, 선배에게 동참 제안을 받았던 이주민 봉사단체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진행하면서였다. “여의치 않은 형편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는 이주민들이 많았어요. 이주민들을 위한 별도 법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은 그 때 정해졌어요.” 그는 ‘감사와 동행’의 설립 배경을 이렇게 소개했다. 고 변호사는 이주민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도 분명하게 짚었다. “지난 5월말 법무부 통계를 보면 외국인 224만6,137명 가운데 약 14%인 31만2,346명이 미등록체류(불법체류) 외국인 입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불법체류자들의 대부분이 고용주의 상습 폭행에 따른 피해보상이나 밀린 임금 체불 등으로 범법자가 됐다는 데 있어요.”

그는 특히 이주민에 대한 학대가 도를 넘고 있다며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을 사례로 제시했다. “지난해 한 이주여성이 한국 남성에 의해 14시간 동안 감금되고 아주 심하게 폭행을 당한 다음, 살해된 끔찍한 사건이 있었어요. 결혼 이주 여성들의 문제 또한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습니다.” 사건 개요 등을 전한 고 변호사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2개월 동안 결혼이주 여성 9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42%가 심한 욕설이나 신체적 학대 등을 당했다고 답했다.

고지운 이주민 무료 지원 공익법인 ‘감사와 동행’ 대표 변호사는 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 사무실에서 만나 “이젠 이주민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지운 이주민 무료 지원 공익법인 ‘감사와 동행’ 대표 변호사는 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 사무실에서 만나 “이젠 이주민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아…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 

이주민 도우미로 나섰지만 사실, 고 대표나 ‘감사와 동행’의 형편은 녹록지 않다. 당장, 경제적인 부담이 적지 않다. 소송 수임료나 성공보수도 없는 무료 변호인 데다, 상황이 열악한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이다 보니 교통비 등으로 새어나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고 대표를 찾는 이주민들은 서울 등 수도권을 넘어 지방에도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도의 일반 연구보고서 공모에 나서면서 용역비 등으로 수입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다. 그나마 서울지방변호회의 무료 사무실 임대와 현재 120여명이 물심양면으로 보내주고 있는 개인 후원이 사실상 고 대표와 ‘감사와 동행’의 젖줄이다. 올해 개인 후원 목표가 200명이지만 달성 가능성은 미지수다. “서울지방변호회와 일반 시민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저희가 지금까지 버티진 못했을 겁니다.” 지난해 말 두 번이나 과로로 쓰러진 고 대표였지만 주변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고 대표는 스스로 선택한 가시밭길이지만 보람도 있다고 했다. “이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는 상당한 정신적 후유증을 안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도 이주민들이 저희들에게 법률적 도움 지원을 받아서 제대로 된 피해 보상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때는 뿌듯합니다.”

고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선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절실하다는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이주민이라고 하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각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요. 제 손을 거쳐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민들 가운데 다시 한국을 찾고 싶다는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주민들도 더불어 살수 있는 사회가 진짜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닐까요.” 고 대표는 그의 스마트폰에 입력된 이주민 메시지를 보면서 다음 만남의 장소로 향했다. 글ㆍ사진=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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