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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자동차의 나라

입력
2017.11.30 13: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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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 동안 생소한 건축용어가 매스컴을 휩쓸었다. 1층을 기둥으로 들어올린 구조인 ‘필로티’가 그것이다.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필로티의 기둥이 파열된 다세대 주택 사진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필로티=지진에 취약‘이라는 공식이 정설이 되어버린 듯하다. 꼭 그렇지 않다며 건축 전문가들이 필로티 구조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역부족이다. 필로티 구조가 지진에 취약한가를 밝히는 것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문제다. 그러나 기둥이 파괴된 채 서있는 건물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합리적 논쟁의 여지를 앗아갔다. 사람들 뇌리에 필로티 건물은 지어서는 안 되는 건물로 각인되었다.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필로티를 보면, 현대건축의 주요 요소로 필로티를 언급했던 건축계의 거장 ‘르 꼬르뷔제’가 울고 갈 노릇이다. “이보시오. 내가 주장했던 필로티는 그게 아니오. 필로티는 건물이 빼앗은 공공의 거리에 여유를 주고, 녹지와 주차장을 넣어 편리하게 해주는 요소란 말이오!” 그러나, 우리 눈에는 오로지 위험천만한 기둥만 보인다.

이왕 필로티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필로티 건물을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지진의 위험성도 있지만 집이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나를 질문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 필로티 건물이 이렇게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결국은 자동차 때문이다. 내 경우에도 막상 설계를 하다 보면 필로티 형태의 건물로 귀결되는 일도 곧잘 있다. 건축주는 이익을 위해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하려고 하고 그러기 위해 넘어야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주차 문제다. 가구당 1대에 가깝게 주차장을 만들어야 하는 현행 법규를 맞추다 보면 1층은 대부분 주차장이 될 수밖에 없다. 1층을 자동차에 내어준 건물은 기둥으로 서야 한다. 법규를 자세히 보면 이것은 필로티 구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필로티로 할 거지? 필로티로 하면 혜택을 줄게!”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그 기저에는 자동차를 포기할 수 없는, 아니 자동차를 최우선에 두는 우리 도시의 모순적 인식이 있다.

우리의 도시는 자동차를 기반으로 설계된다. 법규와 행정이 이를 뒤따른다. 내비게이션을 한 달만 업그레이드 하지 않아도 내 자동차는 산 위를 달릴 때가 많다. 그만큼 자주 새로운 도로가 생긴다. 새로운 도로가 계속 생기는데도 차는 늘 막힌다. 필로티 건물이 줄지어 있는 동네의 모습도 이런 상황에서 출발한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건물의 1층을 자동차에게 내어주었고, 자동차가 점령한 건물의 저층부는 늘 어둡다. 애초부터 우리의 필로티는 거주자들이 소통하고 보행자들이 자유롭게 다니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오로지 자동차를 세우기 위한 필로티다.

이런 분위기에도 약간의 변화는 있다. 자동차가 적거나 없어서 사람들이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더 흥행(?)이 된다는 걸 경험한 탓인지 보행자 위주로 거리를 활성화하려는 지역도 점차 생겨나고 있다. 때로는 오픈 스페이스나 외부공간을 만들도록 혜택을 주어 법규에 정해진 주차대수보다 적게 설계하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가 줄어든 만큼 사람들의 공간은 더 늘어난다.

물론 주차가 줄어든다고 바로 살기좋은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며 필로티 건물의 적합성은 계속 논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건축과 관련된 법과 제도, 그리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 사람이, 자동차보다 사람이 더 우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내진설계 역시 무조건 튼튼하게 지어 자산을 보호하자는 법규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지진이 났을 때 건물이 붕괴하는 시간을 최대한 더디게 해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피할 시간을 버는 것이 내진설계의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사람을 위한 제도인 것이다. 집은 사람을 더 배려해야 한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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