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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밝힌 ‘하루키 열풍’의 비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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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밝힌 ‘하루키 열풍’의 비밀 3

입력
2017.03.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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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캐리커처=파리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 캐리커처=파리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가 지난달 24일 일본에 출간되면서 올 여름쯤 국내에도 한국어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하루키 소설 중 단행본으로는 ‘여자가 없는 남자들’(2014) 이후 3년 만에, 장편소설로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 이후 4년 만에 나오는 이번 작품은 이혼한 30대 남자 화가가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제목의 그림을 두고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신작엔 환상성, 성적 코드, 클래식 음악 등 하루키 특유의 소설 기법이 망라된 것으로 알려져 팬들의 기대를 한껏 높이고 있다.

하루키의 출세작 ‘상실의 시대’(1987ㆍ원제 ‘노르웨이의 숲’)가 번역 출간된 90년대 초반 이래 사반세기 동안 한국에서 식을 줄 모르는 하루키 열풍의 비결로는 ▦세련된 감성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 ▦부단한 자기 진화가 우선적으로 꼽힌다.(▶ 관련기사) 하루키 자신은 이러한 분석에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외부 활동을 좀처럼 하지 않는 작가가 장편 ‘1Q84’를 완간(전 3권)한 7년 전 이례적으로 일본 잡지와 사흘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국내에선 ‘문학동네’ 2010년 가을호에 번역 게재)에서 발언한 내용을 살피면서 미진하나마 해답을 구해봤다.

1. 감성: “내 상처 속에서 내적인 이야기가 태어나”

-몸의 심지에 쉽사리 식지 않는 확실한 온기가 있다는 것, 그 피지컬한 질감이 따른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손을 잡는다는 행위를 통해 등장인물들은 그 질감을 서로 확인하는 건지도 모릅니다.(중략) 덴고와 아오마메(*’1Q84’의 남녀 주인공)도 열 살 때 서로의 손을 꼭 맞잡음으로써 마음에 심지의 온기 같은 것을 얻을 수 있었어요. 그 온기의 기억이 두 사람을 결과적으로 돕게 됩니다.(*‘1Q84’의 화두가 사랑이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자립하여 자유로워지고, 스스로 일을 하고, 내 생활시스템을 구축해감에 따라, 내가 어느 정도의 상처를 입었는가 하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부모를 탓하는 게 아닙니다. 사고방식도 생활방식도 전혀 다르지만, 그건 어쩔 수 없죠. 다만 거기에서, 그 아픔에서, 그 괴리감에서, 나 자신의 내적인 이야기가 태어난 거죠.(*29세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소설이라는 것은 원래부터가 바꿔놓기 작업입니다. 심적 이미지를 이야기 형태로 바꿔놓는 거죠. 그 바꿔놓기가 어떤 경우에는 수수께끼 같겠죠. 연결 상태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겠죠. 그러나 만약 그 이야기가 독자의 가슴에 와 닿았다면, 그건 어딘가에서 제대로 연결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잘 모르지만 기능하고 있는’ 블랙박스가 요컨대 소설적 수수께끼입니다.(*자신의 소설이 수수께끼 풀이의 대상으로 읽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2. 스토리텔링: “살아있는 이야기를 쓴다는 증거는 바로 독자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그것은 진짜 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상의 ‘나’이지만) 이런 식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분명한 감이 있어서, 그 작업을 아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예가 ‘양을 둘러싼 모험’(1982)이죠. ‘나’라는 주인공은 극히 평범한 도시생활자이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몰립니다. 여러 기묘한 사람을 만나고, 그러면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일들을 체험하죠.(*초기 소설이 1인칭 소설이었던 이유를 설명하며)

-‘태엽 감는 새’(1994~1995ㆍ전 3권)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벽을 빠져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중략) 가로막힌 것처럼 보이는 세계도 실은 가로막혀 있지 않다는 것, 그게 가장 쓰고 싶었던 것이었어요.

-전후문학은 극히 간단히 말하자면 아방가르드(전위)와 리얼리즘의 대립이었죠. (중략) 그 어느 쪽 진영도 ‘이야기’라는 것을 특별히 중요시하지 않았죠. 일본의 전후문학 작품 중에 읽고 나서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을, 내 개인적인 경우지만, 별로 없습니다.(*소설가로서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설명하며)

-나는 독자가 책을 사주는 것에 가장 크게 의지합니다. 독자가 내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계속 사주는 것은 내가 살아있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하나의 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증명이 있으면 종이책이 계속되든 전자책이 중심이 되든 그리 관계없지 않을까요. 이야기라는 것은 수천 년을 이어오면서 다져진, 수명이 길고 강인한 폼(form)입니다. 하드웨어 하나로 확 바뀌지는 않습니다.

3. 진화: “내 안의 여성성을 파고들어 봤을 뿐”

-‘노르웨이의 숲’(1987)은 원래 250매 정도의 가벼운 소설로 쓸 예정이었는데, 쓰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어서 결국 장편이 돼버렸죠. 다 쓴 뒤에는 리얼리즘은 ‘그만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이런 소설은 두 번 다시 쓰고 싶지 않다,라고요. 이건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타입의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확장해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며)

-1986년부터 유럽에 있었지요. 3년 동안 유럽에 머물며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1988), 그리고 ‘TV 피플’(1990)에 수록된 단편을 몇 편 썼습니다. 해외에 살았던 덕분이기도 할 텐데, 30대 후반부터 40대 직전의 그 시기에 딴 데 신경쓸 것 없이 오로지 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내게는 큰 전환기였어요.

-씨실처럼 수평적으로 흐르는 1인칭 소설에 역사를 날실로 집어넣어 수직 방향의 흐름을 도입하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왔습니다. 그런 예감은 ‘양을 둘러싼 모험’의 ‘양박사’ 때부터 있었어요. 그래서 ‘태엽 감는 새’라는 이야기에 노몬한(*1939년 만주-몽골 국경지대인 노몬한에서 일어난 일본군-몽골ㆍ소련군 간 대규모 충돌사건)을 엮어가자고 생각한 것이 내겐 딱히 엉뚱한 일은 아니었습니다.(*역사소설 요소를 작품에 가미한 이유를 설명하며)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게 있죠. 남자의 무의식 속에는 아니마라는 여성성이 있고, 여자의 무의식 속에는 아니무스라는 남성성이 있다. 그런 말을 들어도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만, 소설을 쓰다보니 그게 쉽게 이해됐어요. ‘이건가?’하고 생각하며 내 속의 여성성 같은 것을 파고들어가보니 아주 재미있는 것이 나오더군요. 그것도 여자를 나 나름대로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 한 가지 이유일지 모릅니다.(*’1Q84’에서 여주인공의 심리를 리얼하게 표현했다는 의견에 대해)

한국일보 웹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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