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윤주 기자

등록 : 2017.06.20 04:40
수정 : 2017.07.10 09:46

[컬처피디아] 두시간이면 한권 뚝딱... 짧아진 소설

등록 : 2017.06.20 04:40
수정 : 2017.07.10 09:46

단편소설보다 짧은 초단편소설 인기가 심상치 않다. 초단편소설집을 냈거나 낼 예정인 중견 작가들. 왼쪽부터 이기호, 성석제, 백가흠, 정이현, 조경란. 한국일보 자료사진·문학과지성사 제공

장강명 조남주 최근 히트작 등

원고지 500매 내외 경장편 붐

5~30매 초단편 모음도 쏟아져

SNS 단문에 익숙해진 독자층

짧은글 선호…日선 이미 정착

성석제부터 이기호까지 한국 문단에서 입담 좀 있다는 이들이 하나같이 ‘꽂힌’ 장르가 있다.

200자 원고지 5~30매 가량의 초단편소설이다. 최근 초단편소설집을 낸 이 작가들은 여세를 몰아 각종 매체에 초단편소설을 연재하거나, 이전 초단편소설집 개정판을 냈다. 장강명과 조남주 등 요즘 뜨는 젊은 작가들이 하나같이 몰두하는 장르도 있다. 원고지 500매 내외의 경장편소설이다. 이들이 쓴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등이 잇달아 히트하며 경장편 소설은 신인 작가의 출세작 등용문이 됐다.

소설이 짧아지고 있다. 단편보다 더 짧은 초단편소설이 쏟아지고, 장편보다 더 짧은 경장편소설이 문학출판사 ‘주력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단편소설의 흐름은 지난해 2월 출간된 이기호의 초단편소설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마음산책)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확연하게 바뀌었다. 출판사조차 “이렇게 많이 나갈지 몰랐다”는 이 책은 이제까지 23쇄 10만부를 찍으며 지난해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이후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던 한국 문학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구자명의 ‘진눈깨비’(나무와 숲), 조경란의 ‘후후후의 숲’(스윙밴드), 최민석의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보랏빛소), 안영실의 ‘화요앵담’(헤르츠나인) 등 초단편소설집이 지난해 나온 데 이어 올해는 김솔의 ‘망상, 어’(문학동네), 성석제의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문학동네)이 출간됐다. 백가흠 작가도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초단편소설집 ‘그리스는 달랐다’(난다)를 다음 주에 낸다.

짧디 짧은 소설은 ‘손바닥 소설’ ‘엽편 소설’로 불리며 1960년대 황순원 조세희 허윤식 등이 간헐적으로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가볍고 일상적이라서 국내 순문학계에서 주류를 이루진 못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초단편소설 인기는 몇 해 전부터 예상됐다”며 “초단편소설집인 박완서의 ‘세 가지 소원’(2009), 정이현의 ‘말하자면 좋은 사람’(2014)을 냈는데, ‘말하자면…’부터 반응이 좋아 8쇄 2만부를 찍었다”고 말했다. 마음산책은 ‘짧은 소설’ 시리즈로 하성란, 이승우, 편혜영 등 중견 작가들의 초단편소설집을 낼 계획이다.

장편보다 짧은 경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한국이 싫어서'로 확실하게 입지를 다진 소설가 조남주(왼쪽)와 장강명. 민음사·한겨레출판 제공

2013년 ‘오늘의 젊은작가 시리즈’로 경장편소설을 출간하기 시작한 민음사는 ’82년생 김지영’, ‘한국이 싫어서’, 김중혁 작가의 ‘나는 농담이다’를 각각 14만부, 4만부, 1만부 발행하면서 경장편을 “주력 장르”로 잡았다. 서효인 민음사 한국문학팀 편집자는 “처음 경장편을 단행본으로 낼 때, 독특한 시도라고 회자됐지만 이제는 한 장르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서 편집자는 “지난 18일 막을 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일본 편집자들이 초단편, 경장편소설에 유독 관심을 보였다”며 “일본은 짧은 소설 선호가 우리보다 더해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초대형베스트셀러 작가급 작품이 아니면 초단편, 경장편 신작을 선호한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경장편 인기를 타고, 출판사 작가정신은 1998년에 냈던 중편시리즈 ‘소설향(香)’ 중 최윤의 ‘숲 속의 빈터’, 백민석의 ‘죽은 올빼미 농장’ 등을 특별판으로 다시 냈고, 이 개정판을 시작으로 신작이 바통을 잇는 시리즈를 이어갈 예정이다. 출판사 은행나무 역시 배명훈의 ‘가마틀 스타일’(2014)을 시작으로 300~400장 분량의 중편소설을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로 내고 있다. 편혜영의 ‘홀’(문학과지성사)처럼 중견 작가들의 장편 역시 원고지 500매 내외의 분량으로 나오고 있다.

매체 환경이 변하며 수요가 공급을 만들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조재룡(고려대 불문과 교수) 문학평론가는 “2~3년 전부터 ‘악스트’, ‘릿터’, ‘더 멀리’ 같이 패션지처럼 읽히는 문예잡지가 발행되면서 독자들이 빨리 쉽게 읽을 수 있는 초단편소설 지면을 만들었고, 연재된 작품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회자되면서 대중에게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스마트폰 등 출현으로 3분을 넘지 않는 웹드라마가 등장하는 것처럼, 짧은 글이 선호되는 환경에서 초단편소설, 경장편 소설은 문학출판사가 출간 기획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장르가 됐다”는 것이다. 조 평론가는 “국내 순문학 작가들이 장편보다 단편소설에 강해 더 짧아진 소설 경향에 적응하기에 유리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독자들은 넉넉잡아도 2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소설들을 왜 ‘책으로 사서’ 보는 걸까. 정은숙 대표는 “독자가 책 한 권을 살 때는 글만 사는 게 아니라 편집의 체계 형식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책 디자인부터 판형, 여백까지 독자 손에 들고 있는 모든 총합을 갖고 싶기” 때문에 “짧고 함축적이고 쉬운 이야기 속에 반전과 쾌감이 있는 소설 책이 인기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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