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국선변호사 임무는 사회적 약자 의견 듣는 것”

알림

“국선변호사 임무는 사회적 약자 의견 듣는 것”

입력
2017.01.04 16:41
0 0
최근 국선변호사로서 경험을 담은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를 펴낸 신민영씨는 "법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
최근 국선변호사로서 경험을 담은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를 펴낸 신민영씨는 "법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

신민영(39)씨는 서울남부지법 국선전담변호사다. 사회 고위층의 변호를 맡으며 재판 하나에 수천만원의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와는 거리가 꽤 있다는 얘기다. 주로 돈이 안 될 뿐 아니라 판결을 뒤집을 만한 가능성도 희박한 형사재판 피고인을 변호한다. 당연히 사회적 약자를 변호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국선변호사에 대한 편견도 잘 알고 있다. 억울한 주인공의 하소연을 듣는 둥 마는 둥 대충 시간만 때우다 사라지는 불성실한 존재라는 것이다. 5년차 국선변호사로서 겪고 느낀 것을 최근 책으로 펴낸 신 변호사는 지난달 29일 한국일보를 찾아 “영화나 드라마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국선변호사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며 “국선변호사가 서류 한두 장 대충 쓰면서 쉽게 돈 버는 게 아니라 엄청난 고민과 자료수집의 과정을 거치며 일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국선변호사가 “유죄판결이 거의 확실한 사람에게 법 질서와 사회에 대한 원망 없이 적절한 죗값을 받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물론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고인이 무죄를 받도록 돕는 일도 포함한다. 그가 펴낸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에는 피고인이 억울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실낱 같은 가능성을 찾아 뛰고 또 뛰는 열혈 국선변호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에서 1,000여건의 사건을 변호하면서 겪었던 몇 가지 사례를 이야기하며 형법에 관한 쟁점을 짚어낸다.

신 변호사는 실제 형사재판의 예를 들며 형법이 지닌 모순에 질문을 던진다. 간병하던 치매 남편을 변압기로 내리친 할머니, 자살하려던 아버지를 폭행해 살해한 소년,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유죄를 고집하는 중년 남자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있는 사건들 속에서 그는 ‘아동학대 사건은 가해자 처벌만이 정답일까’ ‘환자의 주장만을 담은 진단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부검이나 필적감정은 언제나 정확할까’ ‘정당방위는 왜 인정받기 어려운가’ 같은 질문을 계속 이어간다.

이 책에 담긴 치열함은 그가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국선변호사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법을 공부하며 정의로운 변호사를 꿈꿨는데 국선변호사가 가장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직 안에 있으면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이 많겠지만 국선변호사는 개인사업자 신분이니 소신껏 일할 수 있을 거라 여겼죠.”

‘공권력에 희생된 사회적 약자를 구해주는 정의의 사도’라는 환상은 현실과 부딪히며 조금씩 수정돼 갔다. 막상 실제로 사건을 들여다 보니 논점이 단순하게 정리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피고인보다 피해자가 더 사회적 약자인 경우도 많았고, 피고인이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왜곡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다양한 측면을 모두 고려하고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는 것만이 답이었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법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사회적 약자가 더 약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법을 모르거나 잘못 알았다고 해서 위법 행위가 무죄 판결을 받지는 않는다. 일례로 국내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공격적인 방어 행위는 대부분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는다. 또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사실을 적시했다 해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특정 후보를 비방한 경우 법규 위반이 된다. 그는 “법의 방대한 내용을 다 가르칠 수는 없지만 기초체력만이라도 닦아 놓아야 한다”며 “법을 몰라 억울한 상황을 당하지 않으려면 기본적인 법 공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얼까. 그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가련함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책 제목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다. 사회적 약자인 사람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말이다. “방관자로 남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은 가해자보다 방관자 때문에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사회가 비난하는 사람을 멀리서 방관하지 않고 가까이서 보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