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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샌더스는 없을까, 있어도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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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샌더스는 없을까, 있어도 모를까

입력
2016.03.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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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테드 롤 지음ㆍ박수민 옮김

모던타임스 발행ㆍ224쪽ㆍ1만3,800원

남의 떡은 커 보인다. 허기가 지면 그럴 만도 하다. 그렇다고 너무 남의 떡에 침 흘려대면 그것도 좀 보기 흉하다. 스페인의 포데모스와 그리스의 시리자, 그리고 영국 노동당의 ‘붉은 에드’에 이은 제레미 코빈과 미국의 버니 샌더스가 그 떡의 이름이다. ‘버니’는 미국 시사 만평가 테드 롤이 그린, 화제의 인물 버니 샌더스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책의 전반부는 군침 흘릴만한 이야기들이 흐른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민주당의 우경화, 공화당보다 더 공화당스러운 대통령 지미 카터, 레이건 집권기 지속적인 민주당 내 좌파의 축소, 당내 친기업 세력들이 옹위한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

이런 전반적 흐름을 읽다 보면 이번 미국 대선을 앞두고 좌파들 사이에서 “차라리 트럼프를 당선시키자. 트럼프는 4년이면 끝나지만, 힐러리가 되면 공화당이 8년 집권하는 셈”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와중에서도 꿋꿋하게 북유럽식 사회주의를 옹호해온 인물이 샌더스니까, 더 빛나 보인다.

책이 중ㆍ후반부로 넘어가면 조금씩 다른 풍경들이 나온다.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 때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자본주의적 경기부양을 시도했다. 버몬트주 하원의원 때는 전미총기협회 후원 법안을 지지했다. 시골인 버몬트에서 사냥은 주민들의 낙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라크전은 반대했지만 아프가니스탄 침공에는 찬성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검토안은 반대했다. 거기다 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해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드론 암살계획도 반대하지 않았다. 오바마처럼 ‘흑인’도 아니고, 힐러리처럼 ‘여성’도 아니니 ‘정체성’ 정치에도 취약하다. 실제 정체성 관련 단체들은 ‘백인 남성’이란 이유로 샌더스에게 거부감을 표한다. 더구나 진보를 대표하고 싶다면서 진보정당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민주당의 당내 경선을 택했다. 별도 후보로 나왔을 경우 버텨낼 선거자금이 없고, 표가 갈리면 결국 트럼프만 좋은 일 시키고 말 것이라 판단 때문이다.

조지 부시를 ‘현대사 최악의 대통령’이라 부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이런 말도 한다. “조지 부시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유머 감각도 있고 가정적이기도 하죠.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아내도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정치인의 인간성에 초점을 맞출수록 민주주의는 후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자신의 ‘50년 꼿꼿 인생’에 대한 얘기도 꺼린다.

아인슈타인인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지방대 시간 강사를 하고 있을 것이란 농담을 빌리자면, 샌더스가 우리나라에서 정치했으면 한쪽에서는 ‘빨갱이’로 몰고, 다른 쪽에서는 ‘왼쪽 깜박이 켜고 우회전한다’고 비판받으면서 이미 KO당했을 것만 같다. 샌더스를 부러워하기보다, 샌더스를 못 찾아내고 있는 건 아닌지, 못 알아보고 있는 건 아니지 고민하는 게 낫지 않을까.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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