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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떻게 사람이 되는가 그리고, 사회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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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떻게 사람이 되는가 그리고, 사회란 무엇인가

입력
2015.04.2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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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발행ㆍ297쪽ㆍ1만6,000원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발행ㆍ297쪽ㆍ1만6,000원

모든 학문은 정의(定義)에서 시작해 정의로 끝난다. 정치학은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고, 인문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응답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학자 김현경(46)의 첫 저서 ‘사람, 장소, 환대’는 원대한 야심의 소산이라고 해도 좋다. 삼각형의 세 꼭지점처럼 맞물리는 사람, 장소, 환대의 세 개념을 통해 오늘날 이곳에서 ‘사회란 무엇인가’ 도발적으로 묻고 과감하게 답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정의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사람의 정의부터 확정해야 한다. 저자는 사람을 인간과 구별하며 공동체의 구성이 될 권리인 성원권을 갖는 자로 정의한다. 잉태나 탄생의 순간 자동적으로 승인되는 인간과 달리 사람이란 장소의존적인 개념이다. “사람이라는 말은 사회 안에 자기 자리가 있다는 뜻”이며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인정투쟁이 불가피하다. 노숙인과 부랑자, 이주민, 여성, 유색인종, 이주민, 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시민권을 가진 인간이기는 하되 실상 사람이지는 못했던 이유다.

저자는 인간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상호작용의 질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질서는 “내가 너에게 인사하면, 너도 나에게 인사한다”는 의례 교환의 대칭성이라는 형태로 가시화된다. 이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발견은 신분 질서의 해체, 즉 개인들이 신분과 무관하게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집단적 의례 및 상호작용 의례가 신분적 의례를 압도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길을 묻는 걸인이 외면당할 때, 아파트 경비원이 상한 음식을 투척 받을 때, 항공기의 승무원이 부사장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 근대성이 성취한 의례 교환의 평등성과 호혜성이라는 신화는 붕괴한다. 배제와 낙인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모욕과 굴욕과 경멸은 그래서 오늘날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근대화란 이전까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던 이들이 사회적 성원권을 획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굴욕은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 하에서 지배적인 모욕의 형식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로 유의미하다. 모욕에는 언제나 가해자가 있지만 굴욕은 그렇지 않다. 모욕이 상호작용 질서에 속하는 문제라면, 굴욕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문제로 치환되며 보복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대중이 열광하는 이효리의 뱃살 사진은 자기 관리를 못한 이효리 자신의 실책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해고를 당하는 것 역시 온전히 나 자신의 무능함 탓이며, 거기서 굴욕감을 느낀다면 그건 나 자신이 지질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상호작용 질서의 차원에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면서도, 구조의 차원에서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단을 빼앗는다는 점이다.”

칸트에서 데리다로 이어지는 환대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를 재정의하려는 저자는 환대라는 단어 앞에 어떤 한정어구도 붙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환대는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으며, 복수하지 않는 ‘절대적 환대’여야 한다. 범죄자에 대한 형벌마저도, 절대적 환대의 원리에 따라, 규칙 위반에 대해서만, 위반자가 이미 계약의 당사자로서 동의한 만큼만 가해져야 한다. 단언컨대, “절대적 환대 없이는 사회가 생겨날 수 없”으며, “환대 받음에 의해서만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 환대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와 문명’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서울대, 연세대 등에서 강의했고, 현재는 독립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광범위한 이론과 대중문화의 풍부한 콘텐츠들을 종횡무진하는 글쓰기가 묵직하면서도 날카롭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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